동유럽과 동북아시아의 복잡한 국제 정세 속에서 한반도 평화서밋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이 자리에서 세계 각국의 지도자들은 '공생·공영·공의주의 사회 실현'이라는 대주제를 중심으로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 나아가 세계평화의 중요성을 한목소리로 강조하였습니다.

이러한 시대적 요구에 발맞추어, 인류 역사의 종말기에 이르러 인간의 창조 이상을 복귀할 수 있는 때가 왔습니다. 민주주의적인 자유를 찾아 인간 본연의 모습을 더듬어 나아가면, 결국 누구나 이러한 사회주의적인 생활체제를 요구하게 됩니다. 이에 따라 민의가 이러한 방향을 지향하게 되면, 정치 또한 그 방향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게 되며, 궁극적으로 하늘을 중심한 사회주의 사회가 도래하게 될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하늘을 중심한 사회주의 사회는 바로 오늘날 우리가 논하는 공생·공영·공의주의 사회를 의미합니다.

지난 글에서 오웬의 공동체 활동과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 사상을 살펴보았듯이, 이번에는 이러한 이상 사회를 향한 인류의 역사적 발자취 중 하나인 기독교 사회주의 운동에 대해 깊이 있게 논하고자 합니다.

급변하는 시대의 혼돈 속, 새로운 희망을 찾아서

19세기에 접어들면서 영국의 사상가들을 통해 가톨릭 사회주의와 프로테스탄트 사회주의 등이 등장하게 된 것은, 모두 창조 이상을 지향하는 인간 본성의 자연스러운 발로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종교는 그 기능과 역할의 변화가 요구되는 시대를 맞이하였습니다. 과거 기독교가 인간 심령의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여 종교개혁이 일어났듯이, 종교가 자신들의 이익만을 추구하고 기득권을 옹호함으로 인해 공산주의의 출현을 막지 못했던 아픈 역사가 있습니다. 현재 선진국을 비롯하여 전 세계적으로 급격한 종교 이탈 현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는 다양화되는 세상 속에서 종교가 빛과 소금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그러나 종착점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을 의미합니다. 종교의 소멸이 아니라, 종교가 새로운 역할을 찾아나가야 할 때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답으로서 하늘을 중심한 공생·공영·공의주의 사회 건설이라는 새로운 비전이 제시됩니다. 이는 하늘부모님을 중심한 인류 한 가족을 이루는 지상천국의 건설을 뜻하며, 오늘날 다양한 포럼과 대회에서 논의되는 공통된 주제이기도 합니다.

산업혁명의 그림자, 그리고 교회의 침묵이 낳은 비극

18세기 중엽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은 유럽 사회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산업화를 통한 인구의 급증, 대중의 교육 수준 향상, 그리고 민주주의의 등장은 새로운 시대를 예고하였습니다. 특히 민주주의의 확산으로 모든 성인 남성에게 선거권이 부여되면서, 일반 대중은 정치적 의식을 갖추고 사회 및 정책 결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대중 사회가 등장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발전 이면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습니다. 대규모 산업체의 성장은 자본가에 의한 공장 근로자들의 착취와 억압이라는 심각한 사회 문제를 야기했습니다. 하루 12~15시간에 달하는 장시간 노동, 임금의 80%가 식비로 나가는 저임금, 전체 노동자의 절반 이상이 18세 이하인 아동 노동 문제, 비위생적인 노동 환경 등 비인간적인 삶을 강요당해야 했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교회는 노동자들의 비참한 삶에 대해 무관심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이들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자본가의 편에 서서 그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이 같은 교회의 태도는 교회와 노동 운동 사이에 심각한 적대 관계를 초래했습니다. 노동 운동은 점차 반종교적이고 반교회적인 태도를 나타냈으며, 노동 계급은 교회를 "민중의 아편"으로 여기며 교회를 등지는 현상이 만연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혼란 속에서 반기독교적인 유물사관을 내세운 칼 마르크스의 사상이 확산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정신으로 세상을 밝히다: 기독교 사회주의의 발자취

사회적 혼란에 대응하여 사회주의의 기본적인 목적과 기독교의 신앙적·윤리적 확신을 통합하려는 시도가 나타났는데, 이것이 바로 19세기 초에 등장한 '기독교 사회주의'입니다. 19세기 초 프랑스의 철학자는 '새로운 기독교 정신'을 주창하며 가난한 사람들의 고통을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하였습니다. 그의 사상은 종교를 기반으로 하는 협동 정신이 사회에 만연한 자기중심주의와 적대감을 몰아낼 수 있다고 믿었으며, 이에 상속권 폐지를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이후 그의 제자들은 산업 조직에 기독교적 원리를 적용하여 협동조합 운동을 전개했습니다.

영국 성공회 사제이자 케임브리지 대학교 교수를 지낸 찰스 킹스리 또한 기독교 사회주의 운동가였습니다. 그는 노동자 계급의 권리와 사회적 지위 향상을 위해 적극적으로 활동하며 소설을 통해 사회 문제에 대한 날카로운 감수성을 드러냈습니다. 1850년, 킹스리 등과 함께 '기독교 사회주의' 개념을 처음 제시한 모리스는 '사회주의'를 '단체생활에서 하나님의 통치를 구현하려는 시도'라고 정의했습니다. 그는 "사회주의의 표어가 '협동'이라면 반사회주의(자본주의)의 표어는 '경쟁'이다. 경쟁보다 협동이 더욱 강하고 참다운 원리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사회주의자라는 영예와 비난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역설하였습니다.

자본주의가 시장 경제 원리에 입각하여 개인의 경제 활동과 자유를 보장하는 경쟁 체제를 지향했다면, 사회주의는 이러한 경쟁 체제에서 소외되거나 패배한 사회적 약자들을 보호하고 지원하기 위한 사회적 통제와 관리를 제도적으로 마련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자본주의가 개인의 자유를 통한 부의 생산성을 강조했다면, 사회주의는 사회적 통제를 통한 부의 재분배를 통한 평등을 강조한 것입니다. 이후 정치적 사회주의가 계급투쟁을 통해 자본의 재분배를 이루고자 한 반면, 기독교 사회주의자들은 평등 사회를 폭력이나 강제가 아닌 기독교 정신과 신앙으로 성취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즉, 기독교 사회주의는 사회주의가 추구하는 부의 재분배와 경제적 평등 사회를 기독교 신앙과 정신을 바탕으로 구현할 수 있다는 신념이자 운동이라 정의할 수 있습니다.

종교의 새로운 길, 공생·공영·공의의 사회를 향하여

이러한 기독교 사회주의 운동의 물결은 가톨릭에서도 나타났습니다. 19세기 초 가톨릭 자유주의자들은 사회 문제의 중대성을 깨닫고 가난에 대한 논의를 넘어 사회의 구조적 개혁을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고위 성직자들은 소극적인 자선 활동에 만족했으며, 정의 구현을 위한 사회 참여에는 무관심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더욱이 마르크스의 반종교적 사회주의가 19세기 중엽 이후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산업 근로자들에게는 유일한 희망처럼 비쳤습니다. 이에 교회는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에 노동자들을 빼앗길 위기에 직면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가톨릭 사회주의자들은 마르크스 사상에 대한 반동으로 사회 운동을 일으켰습니다. 그들은 교회가 사회 문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사회적 임무이자 사회 윤리의 기본 정신이며, 실천적 임무라는 세 가지 요소를 제시했습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 교황 레오 13세는 1891년 회칙 「노동 헌장」(Rerum Novarum)을 반포함으로써 교회가 공식적으로 사회 문제에 개입하는 중요한 계기를 마련했습니다. 교황은 이 칙서를 통해 근로 대중의 사회 문제를 언급하는 것이 자신의 임무임을 확신하며, 노동자의 비참한 생활과 비인간적인 경영주에 의한 노예 취급 등 사회악을 지적했습니다. 또한 근로자는 고용주를 존경하고 노동 계약을 성실히 이행하며, 고용주는 정당한 보수를 지급하고 합당하게 대우할 것을 당부했습니다. 국가는 사회 복지의 증진과 분배 정의 실현의 의무가 있으며 근로자의 권익을 보호해야 하고, 노사가 서로 협력하여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권고했습니다. 레오 13세의 칙서가 마르크스 사회주의의 확산을 완전히 저지하지는 못했지만, 이후 기독교 노동조합의 발전과 기독교 민주 정당의 탄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하늘부모님을 중심한 인류 한 가족'이라는 공생·공영·공의주의 사회의 구체적인 내용을 찾기 위해 수많은 토의를 통한 집단지성을 모아야 할 때입니다. 이러한 하늘 편 사회주의를 이루기 위해 노력했던 역사적 사실은 물론, 현재 일어나고 있는 많은 시도에 대해서도 함께 찾아나가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노력을 통해 우리가 꿈꾸는 공생·공영·공의 사회의 청사진을 먼저 만들어가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