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역사는 오랜 세월 동안 갈등과 투쟁의 연속이었습니다. 개인의 내면에서 선을 지향하는 본심과 악을 지향하는 사심이 끊임없이 싸우듯이, 이러한 인간들이 모여 사는 사회 또한 선과 악의 투쟁이 반복되는 역사를 만들어 왔습니다. 그러나 인류 역사가 지향하는 궁극적인 이상은 조화와 협력 속에 모두가 함께 살아가는 공생·공영·공의주의 사회입니다. 일시적인 악의 승리처럼 보이는 순간에도 역사는 결국 더 큰 선의 목적을 향해 나아가는 섭리적인 과정을 거쳐왔지요. 이러한 이상 사회에 대한 인류의 열망은 로버트 오웬의 뉴레너커 공동체,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 사상, 기독교 사회주의 운동 등 다양한 형태로 표출되었습니다.

이러한 공동체 이상 운동의 배경에는 기독교 정신이 깊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기독교가 본연의 역할을 다하지 못했을 때 사회적 약자와 빈곤층이 증가하며 갈등과 분열이 심화되었고, 이를 해결하고 구제하려는 움직임 또한 기독교 정신에서 발원한 것이 많습니다. 오늘은 이 모든 이상적인 공동체 운동의 원류가 되는 초기 기독교 공동체의 모습을 통해, 우리가 추구하는 공생·공영·공의주의 사회의 진로에 대한 깊은 통찰을 얻고자 합니다.

모든 경계를 허문 예수님의 삶과 사역

예수님은 인류 역사상 가장 지대한 영향을 끼친 인물 중 한 분입니다. 그분의 가르침과 행적은 시대를 초월하여 많은 이에게 영감을 주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무엇을 말씀하시고, 무엇을 하고자 하셨으며, 실제로 무엇을 행하셨는지를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특히 그분의 실제적인 행위는 그분의 이상을 명확하게 보여줍니다.

첫째, 예수님은 세례를 베푸셨습니다. 당시 유대교의 엄격한 율법은 사람들을 구원하기보다는 얽매는 역할을 했습니다. 수많은 계명과 관습법은 사람들로 하여금 죄의식에서 벗어나기 어렵게 만들었지요. 이때 세례 요한이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면 모든 죄가 사해진다고 선포했을 때, 이는 가난하여 제물을 바칠 수 없거나 병으로 소외된 이들에게 엄청난 구원의 메시지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러한 세례를 계승하신 것은, 율법의 무게에 짓눌려 고통받는 민중의 심정을 헤아리고 그들에게 해방의 길을 열어주고자 하셨기 때문입니다.

둘째, 예수님은 병자를 치료해 주셨습니다. 유대 율법에서 병은 죄로 인한 하나님의 저주로 여겨졌기에, 병자들은 사회적으로 소외되고 차별받는 죄인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병든 자를 고치시는 것은 단순히 육체적인 치유를 넘어, 그들에게 덧씌워진 죄인의 낙인을 지우고 사회로 복귀시키는 영적인 죄 사함의 의미를 가졌습니다. 서기관들이 이를 두고 '참람하다'며 하나님을 모독한다고 생각했던 것은, 그들이 예수님의 행위가 가진 진정한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셋째, 예수님의 갈릴리 사역의 중심은 세리, 창녀, 어부 등 당시 사회의 불가촉천민, 죄인들과 함께 어울리며 먹고 마신 것이었습니다. 이들은 하루 한 끼도 제대로 먹기 힘든 사람들이었기에, 예수님은 배고픈 자들을 먹이고 이들과 함께 삶을 나누는 것을 가장 중요한 사역으로 삼으셨습니다.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거나 밀이삭을 비벼 먹는 행위 등은 당시 율법을 어기는 것으로 비난받았으나, 예수님께는 굶주린 이들에게 금식을 강요하거나 고통받는 이들을 외면하는 것보다 생명의 가치와 사랑이 우선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모든 사회적, 종교적 장벽을 허물고 약하고 소외된 이들과 동고동락하며 진정한 사랑과 평등을 몸소 실천하셨습니다.

차별 없이 모두를 품은 초대 기독교 공동체의 탄생

유대교는 선민사상에 기반한 매우 보수적이고 폐쇄적인 민족 종교였습니다. 유대인과 이방인, 남성과 여성, 성인과 아이, 그리고 신분에 따른 차별이 철저했고, 여성이나 어린아이는 사람의 수에도 포함되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러한 차별을 철폐하고 모두를 공평하게 대우하셨으며, 그분의 이러한 사상은 십자가 사건 이후 제자들에게 그대로 계승되었습니다.

예수님 사후 초기 기독교 공동체가 형성될 때, 복음은 처음에는 사도들을 통해 유대인들에게만 전파되었습니다. 하지만 스데반의 순교와 기독교 공동체를 박해했던 사울(바울)의 회심 사건을 계기로 복음은 이방인들에게도 전파되기 시작했습니다. 사도행전 8장에는 스데반이 사마리아 근처에서 복음을 전하고 에티오피아 사람에게 세례를 주는 기록이 나오며, 이는 이방인 전도의 첫 시작이었습니다.

이후 사도행전 10장에서 베드로는 하나님으로부터 "하나님께서 내게 지시하사 아무도 속되다 하거나 깨끗하지 않다 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받습니다. 이에 베드로는 로마인 고넬료에게 복음을 전하고, 점차 복음은 시리아 등 이방 지역으로 확산되었습니다. 유대인과 이방인이 함께 모인 공동체 안에서 유대 율법과 할례의 적용을 두고 갈등이 일어났으나, 사도행전 15장의 예루살렘 공의회는 이방인 신자들이 유대인이 될 필요 없이 자신의 고유한 문화와 관습을 지키면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에 동참하고 살아갈 수 있음을 인정했습니다. 이는 초기 교회가 인종과 문화를 초월하여 모든 인류를 포용하는 '보편성'을 확립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전환점이었습니다.

공생·공영·공의의 이상을 실현한 '코이노니아'의 정신

초대 기독교 공동체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신자들의 일치를 '공동체적 삶'으로 구현하고자 노력했습니다. 사도행전에 나타난 초기 기독교 공동체의 삶은 크게 세 가지 특징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째, 사도행전 2장 42-47절에 따르면 그들은 "사도들의 가르침과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힘썼습니다." 초기 공동체는 사도들의 가르침, 즉 교육을 통해 신앙의 기반을 다지고 결속력을 강화했습니다. 또한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라는 구절처럼, 함께 나누고 협동하는 생활을 실천했습니다.

둘째, 사도행전 4장 32절-35절에는 초대교회 신자들이 '형제적 친교', 즉 '코이노니아'에 열중했던 모습이 나옵니다. "믿는 무리가 한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는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토대로 신자들 간에 깊은 신뢰와 강한 연대감이 있었기에 공동 소유가 가능했음을 보여줍니다. 이는 단순한 재산의 공유를 넘어, 삶 전체를 함께 나누는 진정한 공동체 정신의 발현이었습니다.

셋째, 이러한 신앙과 상호 신뢰, 나눔을 바탕으로 살아가는 공동체적인 삶은 수많은 선한 증언을 만들어냈고, 이는 선교의 폭발적인 성장으로 이어졌습니다. 유대교의 핍박과 로마 제국의 박해 속에서도 초대 교회는 확고한 신앙과 신뢰, 친교와 연대감으로 더욱 발전해 나갔으며, 예수님 사후 300년이 지나기 전에 로마 사회의 공인을 받고 국교가 되는 기적을 이루었습니다. 이는 교회의 본래적인 사명인 복음 전파를 강력하게 수행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가 세속적인 권력을 얻고 거대해지면서, 예수님께서 이루려고 하셨던 병들고 굶주리며 사회적으로 소외된 약자들이 사람으로 대접받고, 여자나 어린아이, 이방인이 하나로 어울리는 평등한 인류 한 가족의 이상은 점차 희미해졌습니다. 오히려 기득권을 대변하는 종교가 되어 부패했을 때, 기독교는 사회를 구할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개혁의 대상이 되었으며, 사람들은 또다시 새로운 공동체 이상을 찾아 헤매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삶과 사도행전에 나타난 초대 기독교의 순수하고 이상적인 모습은 오늘날 우리가 지향하는 공생·공영·공의주의 사회를 만들어 가는 데 있어 중요한 힌트와 영감을 제공합니다. 초기 기독교 공동체의 정신을 되새기며, 모든 차별과 경계를 넘어 사랑과 신뢰, 나눔을 실천하는 진정한 공동체의 이상을 향해 나아갈 때, 우리는 인류가 염원하는 이상 사회를 현실로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