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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신통일세계의 청사진: 공생·공영·공의주의

지은이 : 권상기 | 지면 : 272쪽 | 판형 : 신국판 | 가격 : 19,000원ISBN: 979-11-997671-1-9 (03290) 길 잃은 문명, 그 고통의 역사를 넘어신통일세계의 아침을 열며 오늘날 인류는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눈부신 과학기술과 물질적 풍요를 누리고 있습니다. 스마트폰 하나로 전 세계와 실시간으로 연결되고, 인공지능(AI)이 인간의 지적 노동을 대체하며 우주를 탐사하는 경이로운 시대에 도달했습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현대인들의 내면은 그 어느 때보다 깊은 우울과 불안, 그리고 고독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달에 우주선을 보내는 길은 찾아냈지만, 정작 이웃과 평화롭게 공존하고 내전과 학살을 멈추는 길은 찾지 못했습니다. 자본주의가 낳은 극심한 양극화, 이념과 성별을 둘러싼 증오, 해체되어 가는 가정, 그리고 인류의 생존 자체를 위협하는 기후 위기 앞에서 현대 문명은 길을 잃고 표류하고 있습니다. 질병과 기아라는 외적 빈곤은 어느 정도 극복했을지 모르나, 삶의 궁극적인 목적과 의미를 상실한 ‘영적·철학적 빈곤’은 오히려 더 깊어진 것입니다. 왜 우리는 이토록 거대한 문명의 진보 속에서도 행복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것일까요? 근대 이후 인류는 이 고통의 원인을 해결하기 위해 종교 대신 ‘인간의 이성’과 ‘과학’이라는 새로운 신(神)을 선택했습니다. 계몽주의 사상가들은 인간의 이성이 모든 무지와 폭력을 끝내고 유토피아를 가져올 것이라 확신했습니다. 니체(Friedrich Nietzsche)는 “신은 죽었다”고 선언하며 인간 스스로가 초인이 되어 운명을 개척해야 한다고 부르짖었습니다. 그러나 이성을 맹신한 결과는 두 차례의 참혹한 세계대전과 홀로코스트였습니다. 나아가 카를 마르크스(Karl Marx)로 대표되는 유물사관은 인간의 모든 불행이 불평등한 경제 구조(물질)에 있다고 믿고 폭력적인 계급 투쟁을 선동했습니다. 그들은 종교를 ‘인민의 아편’이라 조롱하며 공산주의 지상 낙원을 약속했지만, 결과는 1억 명이 넘는 무고한 생명을 앗아간 인류 역사상 가장 끔찍한 전체주의의 억압뿐이었습니다. 세속 철학과 사상들이 이토록 처참하게 파산한 이유는 명백합니다. 그들은 인간을 이기심으로 가득 찬 ‘타락한 존재(원죄)’라는 실존적 사실을 외면한 채, 인간을 단지 이성적 기계나 경제적 부속품으로만 취급했기 때문입니다. 독이 든 뿌리를 그대로 둔 채 가지(사회 제도)만 쳐낸다고 해서 결코 쓴 열매가 단 열매로 바뀔 수는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랫동안 인류의 정신적 기둥이었던 기독교를 비롯한 전통 종교는 왜 이 위기를 치유하지 못하고 있을까요? 기독교는 지난 2천 년 동안 십자가의 대속과 사랑을 전하며 인류 문명 발전에 위대한 공헌을 했습니다. 그러나 시대가 변하고 지성이 발달함에 따라, 낡은 문자주의와 배타적인 교리에 갇힌 신학은 현대인들에게 더 이상 해답을 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과 자비의 아버지가 아니라, 한 번의 불순종(선악과)으로 전 인류를 영원한 지옥불에 던져 넣고, 마지막 날에는 자신이 창조한 지구를 불태워 멸망시키는 무자비한 ‘심판관’으로 오해하게 만든 낡은 종말론과 예정설이 대표적입니다. 이러한 교리 속에서 신앙인들은 세상을 변화시키는 개척자가 되기보다는, 휴거(Rapture)를 통해 하늘로 도피하려는 기복주의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또한 “우리 교단에만 구원이 있다”는 배타적 도그마는 종교를 평화의 매개체가 아니라 역사상 가장 끔찍한 전쟁과 테러의 원인으로 전락시켰습니다. 과학과 종교가 분열하고, 이웃 종교를 악마화하는 편협한 신학으로는 전 지구적인 위기를 결코 돌파할 수 없습니다. 이제 인류에게는 파산한 유물론과 낡은 기성 신학의 한계를 동시에 뛰어넘어, 과학과 종교, 동양과 서양, 그리고 분열된 인간의 마음과 몸을 하나로 묶어낼 수 있는 ‘새로운 진리의 나침반’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이 책은 바로 그 혁명적이고도 따뜻한 나침반인 ‘통일원리(Divine Principle)’를 세상에 제시하고자 합니다. 통일원리의 가장 위대한 철학적 성취는, 우주의 근원적 창조주를 두려운 심판관이나 차가운 지성(제1원인자)이 아니라, 끊을 수 없는 혈통으로 인류를 품어 안으시는 ‘하늘부모님(Heavenly Parent)’으로 재발견한 데 있습니다.  우주를 창조하고 움직이는 가장 근원적인 힘은 권력이나 이성이 아니라, 대상을 향해 무한히 사랑을 베풀고 기쁨을 나누고자 하는 끓어오르는 충동, 즉 ‘심정(Heart)’입니다. 인류의 비극(타락)은 단순히 과일을 훔쳐 먹은 불순종이 아니라, 부모인 하나님을 배신하고 이기적인 거짓 사랑(사탄)과 핏줄을 맺은 ‘사랑의 궤도 이탈’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인류 역사란 죄인을 벌하는 재판관의 기록이 아니라, 집 나간 자식을 찾아 수천 년을 맨발로 헤매며 피눈물을 흘리신 ‘어머니 하나님의 처절한 복귀의 서사시’가 됩니다. 이 위대한 ‘심정’의 관점을 획득할 때, 기독교 신학이 수백 년간 풀지 못했던 선악과의 신비, 예정론의 모순, 십자가의 뼈아픈 진실이 거대한 퍼즐처럼 완벽하게 맞추어집니다. 그리고 통일원리는 온 인류가 차별 없이 행복하게 살아가는 이상 공동체 사회, 즉 ‘공생·공영·공의주의’의 실체적 청사진을 세상 앞에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 공생·공영·공의주의야말로 남북한 양 체제의 단점을 보완하는 것은 물론, 참사랑의 남북공동체를 이루는 제3의 유일한 통일방안입니다. 특히 자유민주주의의 자유 남용과 사회주의의 일률적 평등의 문제를 하늘부모님의 참사랑 안에서 해결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이념적 토대가 된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습니다. 이제 인류는 머지않아 공생·공영·공의주의를 바탕으로 하는 공생의 경제공동체, 공영의 정치공동체, 그리고 공의의 윤리공동체가 하늘부모님을 중심으로 눈 앞에 펼쳐지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이 책은 독자 여러분을 매우 도전적이고 지적인 여정으로 안내할 것입니다. 제1부(이론편)에서는 창조, 타락, 구원, 역사에 이르는 통일원리의 핵심 뼈대를 기존 기독교 신학과 치열하게 대조(비교 변증)하며 풀어낼 것입니다. 왜 구원의 최종 목적지가 개인의 ‘십자가’에 머물러서는 안 되며, 원죄의 핏줄을 씻어내고 온전한 사랑을 꽃피우는 부부와 ‘참가정(True Family)’의 완성, 즉 축복(Blessing)으로 이어져야만 하는지를 이성적이고 설득력 있게 논증할 것입니다. 제2부(역사편)에서는 이러한 원리적 사관을 바탕으로 인류가 이상세계를 쟁취하기 위해 걸어온 실제 역사적 현장으로 들어갑니다.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 복지국가의 실험, 그리고 공산주의와 자본주의의 처절한 사상적 충돌을 해부하며, 왜 이 모든 세속적 실험들이 실패할 수밖에 없었는지 그 근본적 한계를 명확히 짚어낼 것입니다.제3부(비전편)에서는 참사랑의 이상세계를 실체적으로 이루기 위한 비전과 그 이념으로서의 공생・공영・공의주의에 대해서, 제4부(실천편)에서는 이상세계의 비전이 실현된 신통일세계의 실체적 안착을 위한 도전과 앞으로 우리 인류의 사명에 대해서 다루게 됩니다. 우리는 멸망을 기다리는 고아들이 아닙니다. 하늘부모님의 거룩한 자유의지를 상속받아, 잃어버린 에덴동산(신통일세계)을 이 현실의 땅 위에 직접 재건해야 할 위대한 상속자들입니다. 낡은 종교의 두려운 심판관 가면을 벗겨내고, 참사랑의 눈물로 우리를 기다리시는 하늘부모님, 그리고 잃어버린 그 핏줄을 다시 찾아주기 위해 십자가의 짐을 지고 이 땅에 오신 ‘참부모(True Parents)’의 웅장한 진실 속으로 이제 함께 걸어 들어가 보시지 않겠습니까? 본문 속으로 이 우주적인 비극 속에서 하나님은 인류를 다시 구원하기 위해 수천 년의 가시밭길을 맨발로 걸어오셨습니다. 무서운 심판관의 가면을 벗고 나타나신 이 ‘하늘부모님(Heavenly Parent)’의 처절한 심정을 깨달을 때, 우리는 비로소 두려움에 떠는 종과 양자의 굴레를 벗어던지고 하나님의 눈물을 닦아드리는 참된 효자·효녀로 거듭나게 됩니다. (19쪽) 십자가의 승리로 인류는 부활하신 예수님과 성령(영적인 참어머니의 역할)을 통해 영적 중생의 길을 열었으나, 육신을 쓰고 실체적인 참가정을 이룩하는 구원의 궁극적 완성은 다시 오실 재림의 때로 아득하게 미루어지고 말았습니다.5 이것이 바로 재림주님께서 2천 년 전처럼 구름이 아닌 육신을 쓰고 이 땅에 실체로 다시 오셔야만 하는 필연적인 이유입니다. (49쪽) 하나님은 나를 당신의 거룩한 뜻(지상천국)을 이룰 가장 소중하고 유일무이한 중심인물로 예정하고 부르셨습니다. 그러나 그 부르심에 당당히 응답하여 영광스러운 축복의 주인공이 될 것인지, 아니면 책임을 회피하여 하늘부모님의 가슴에 또다시 대못을 박고 슬픈 플랜 B의 비극을 만들 것인지는 전적으로 ‘나 자신의 결단과 참사랑의 실천(5%이지만 나의 100%)’에 달려 있습니다. 천일국(天一國)의 시대가 밝았습니다. 참부모님께서는 인류 역사상 그 누구도 해내지 못했던 메시아로서의 혹독한 책임분담을 처절한 사투 끝에 100% 완수하시고 승리하셨습니다. 이제 그 섭리의 바통은 우리에게 넘어왔습니다. 우리는 운명의 노예가 아닙니다. 우리는 자유의지를 무기로 사탄의 굴레를 박차고 일어나, 하늘부모님의 잃어버린 꿈을 내 가정과 내 나라에 실체로 이룩해 낼 위대한 천일국의 운명 개척자들입니다.  (59쪽) 세계사를 주의 깊게 들여다보면, 과거의 어떤 특정한 시대와 수백 년 후의 시대가 등장인물의 성격, 굵직한 사건, 심지어 기간에 이르기까지 경이로울 정도로 유사하게 반복되는 현상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를 역사의 단순한 우연의 일치라고 가볍게 넘겨버릴 수 있을까요? 원리강론은 이 놀라운 현상을 ‘섭리적 동시성(同時性)의 법칙’이라는 정교한 우주적 법칙으로 규명합니다.5 하늘이 애써 세운 중심인물이 책임분담을 다하지 못해 섭리가 실패로 돌아가면, 하나님은 그 뜻을 결코 포기하시지 않습니다. 일정한 탕감 기간이 지난 후, 하늘은 다른 중심인물을 다시 세우시어 과거에 실패했던 바로 그 지점에서 똑같은 탕감조건을 다시 세우게 하십니다. 이 때문에 역사는 겉보기에는 제자리를 돌고 도는 원(순환)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과거의 탕감 기반을 딛고 나선형으로 상승하며 창조목적을 향해 힘차게 나아가는 것입니다.  (76쪽)과학과 이성을 극대화한 가인형 인생관은 전 지구적인 경제 발전과 인터넷이라는 외적인 ‘물질적 통일’을 완성해 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심정이 빠진 물질문명은 인간을 철저히 소외시키고 이기심의 극치를 달리고 있습니다. 반면 기성 종교로 대표되는 아벨형 인생관은 한계에 부딪힌 채 현대인들에게 명확한 삶의 이정표를 제시하지 못하고 표류 중입니다. 이 두 인생관은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을 멸망시킴으로써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눈에 보이는 세계(과학/경제)와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종교/윤리)를 하나로 묶어줄 완벽한 ‘새 진리(통일원리)’가 등장하여 두 사상을 모두 품어 안아야만 합니다.5 가인형의 물질적 기반 위에 아벨형의 하늘부모님 심정을 채워 넣음으로써, 인류 역사는 마침내 기나긴 이념의 투쟁을 종식하고 ‘신(神)통일세계’라는 영광스러운 종착역에 도달하게 될 것입니다.  (84쪽) 문자에 갇힌 차가운 율법과 교리는 도리어 사람을 정죄하고 죽이는 날카로운 칼이 될 수 있습니다. 종교개혁자들은 중세의 낡은 무지와 폭압은 깨트렸지만, 그 무수한 파벌과 찢겨진 교리를 하나로 융합하여 얼싸안게 할 본질적인 영적 접착제, 즉 ‘하늘부모님의 따뜻한 참사랑(심정)’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또한 인간을 영적으로 억압하던 낡은 제도는 철폐했으나, 인간의 혈통 가장 깊은 곳에 흐르는 원죄의 썩은 뿌리를 근원적으로 맑혀 줄 실체적인 ‘참부모(True Parents)’를 만나지 못했기에 그들의 지상천국 건설 실험은 끝내 처절한 미완성으로 남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교개혁은 인간의 양심과 자유를 해방시키고, 억눌린 인류가 사제를 거치지 않고 하늘부모님과 직접 소통할 수 있는 튼튼한 영적 대로를 열어준 위대한 복귀섭리의 승리였습니다. 이제 피로 얼룩진 맹목적인 종교의 교리 전쟁에 극심한 환멸을 느낀 유럽의 지성인들은, 종교를 넘어 인간의 이성과 철학적 합리성을 통해 평화로운 이상사회를 스스로 구축하려는 새로운 사상적 모험을 떠나게 됩니다. 바야흐로 종교의 그늘을 벗어난 계몽주의의 거센 폭주와 임마누엘 칸트의 위대한 철학이 맞붙게 될 거대한 섭리적 무대가 준비된 것입니다.  (100쪽) 참부모님의 이 섭리적 대예언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소름 끼치는 현실의 역사로 나타났습니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져 내렸고, 이듬해인 1990년 참부모님께서는 적의 심장부인 모스크바 크렘린 궁에 들어가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과 세기의 정상회담을 가지셨습니다. 그리고 1985년 선포 그대로 “공산주의는 끝났다. 오직 하나님을 받아들일 때만이 소련이 살길이다”라는 진리의 선언과 함께, 철의 장막의 주인을 원수가 아닌 사랑하는 아들로서 얼싸안으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예언의 시한인 ‘70년’을 넘기지 않은 1991년 12월 25일, 거대한 소비에트 연방은 총성 한 번 제대로 울리지 못한 채 스스로 붉은 깃발을 내리며 역사 속으로 영원히 사라졌습니다.5 하나님을 부정하며 수천만 명의 피를 흘렸던 붉은 광기가, 하늘의 진리와 참부모님의 참사랑 앞에 실체적으로 완전히 굴복한 것입니다.  (168쪽) 참부모님의 이 뼈저린 말씀처럼, 신통일세계의 경제는 이윤의 극대화가 아니라 ‘위하여 사는 삶(Living for the sake of others)’을 제1의 절대 법칙으로 삼습니다. 내 안에 똬리를 튼 이기심이라는 무서운 암 덩어리를 도려낸 자리에 ‘하늘부모님의 심정’을 온전히 채워 넣을 때, 인류는 비로소 돈의 노예에서 해방되어 만물의 참된 주인이자 주관자가 될 것입니다. 이러한 숭고한 참사랑과 공생의 경제적 토대 위에서만이 비로소 다툼과 억압이 없는 평화로운 정치, 즉 ‘공영(共榮)의 정치’가 활짝 꽃피울 수 있습니다.  (180쪽) 공영의 원리가 적용된 회의장에서는 그 차원이 완전히 다릅니다. 워크숍 자료나 여러 프로젝트 제안서들을 평가할 때, ‘나의 승진과 실적’을 중심에 두는 것이 아니라 ‘이 안건들이 조직 전체의 공적인 목적(하늘의 뜻)을 어떻게 조화롭게 실현할 것인가’를 최우선 기준(정분합 작용)으로 삼습니다. 동료를 밟고 일어서야 할 경쟁자가 아닌 한 식구(형제)로 여기며 그의 아이디어를 진심으로 지지하고 부족한 점을 내 능력으로 보완하여, 그 융합된 최종 프로젝트의 성과를 내 개인의 공로가 아닌 조직 전체의 공영(共榮)과 기쁨으로 돌리게 됩니다. 가장 높은 직급에 있으면서도 만인을 위해 가장 낮은 곳에서 땀 흘리는 ‘섬김의 리더십(Servant Leadership)’과, 이웃의 의견을 존중하고 융합하는 공영주의의 원리가 조직의 구석구석에 스며들 때, 바로 그 회의실과 사무실이 가장 작은 실체적 천일국(天一國)이 됩니다. (186쪽) 참부모님께서 제시하신 신통일세계의 세 번째 비전인 ‘공의주의(共義主義)’는, 흔들리는 폭풍우 같은 세상 속에서 영원히 변치 않는 ‘절대가치’를 인류의 가슴속에 굳건히 바로 세우는 위대한 윤리적 선언입니다. 그리고 이 공의주의를 작동시키는 가장 깊은 뿌리이자 무한한 에너지가 되는 것이 바로 ‘효정(孝情)’입니다. (188쪽)모든 인류의 고귀한 실험들이 일시적인 성공이나 소수의 피난처로 끝나지 않고 전 우주적인 ‘천일국(天一國)’으로 영원히 안착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인류를 사탄의 핏줄에서 하늘의 핏줄로 근원적으로 수술해 주실 ‘참부모(True Parents)’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5 참부모님이 열어주신 축복결혼을 통해 혈통을 전환한 참가정들이 몬드라곤처럼 공영의 일터를 가꾸고, 포콜라레처럼 부를 나누며, 브루더호프처럼 절대 순결의 문화를 전 세계로 확산시켜 나갈 때. 비로소 인류의 낡고 병든 역사는 종언을 고하고 하늘부모님이 직접 치리하시는 영원한 평화의 실체 세계가 이 지상 위에 웅장하게 건설될 것입니다. (199쪽) 한반도의 평화적 통일을 위해 참부모님께서 걸어가신 ‘북한 섭리’의 발자취는, 타락한 정치 외교사에서는 결코 찾아볼 수 없는 눈물겨운 참사랑의 서사시입니다. 1990년대 초반, 전 세계 공산주의 국가들이 도미노처럼 붕괴하자 북한 정권은 극도의 고립과 체제 위기에 몰리며 한반도에 또다시 끔찍한 전쟁의 전운을 짙게 드리우고 있었습니다. 이 일촉즉발의 위기 속에서, 참부모님께서는 1991년 11월 30일, 그 어떤 정치적 보장도 없는 상태에서 목숨을 걸고 적의 심장부인 평양으로 전격 들어가셨습니다. 평생을 승공(勝共) 운동의 선봉에 서셨던 참부모님을 북한 당국은 가장 두려워하는 원수 중의 원수로 여겼습니다. 그러나 참부모님께서는 만수대 의사당에 모인 북한 고위 간부들 앞에서 당당히 “주체사상으로는 북한을 결코 살릴 수 없으며, 오직 하나님주의(두익사상)로 돌아와야만 통일과 번영이 가능하다”고 준엄하게 선포하셨습니다. (220쪽) 이제 남은 것은 오롯이 우리들의 몫입니다. 우리는 더 이상 책임을 회피하며 기적만 요행으로 바라는 역사의 나약한 방관자가 아닙니다. 이 웅장한 천일국을 우리들 매일의 삶의 한복판에 실체적으로 안착시켜야 할 당당한 천일국의 주역들입니다. 매일의 훈독회로 무장하고, 천심원의 기도로 영적인 불을 지피며, 내 가정에서 효정의 참사랑을 완성하여 세상을 향해 신종족메시아로 거침없이 나아가는 것. 그리하여 내 이웃을 살려내고 마침내 하늘의 생명책인 천보(天寶)의 자리에 벅차게 오르는 것. 이것이 복귀섭리의 영광스러운 종착역에 선 우리가, 하늘부모님과 참부모님 앞에 엎드려 눈물로 올려드려야 할 최후의 승리적 보고서입니다. (237쪽) 탕감복귀의 춥고 힘들었던 어둠의 밤은 이제 완전히 끝났습니다. 역사의 찬란한 동이 트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 모두 과거의 상처와 두려움을 털어내고 분연히 일어납시다. 하늘부모님 아래 80억 인류가 한 가족(One Family under God)으로 얼싸안는 영원한 본향을 향해, 천일국의 당당하고 실체적인 주인으로서, 저 찬란한 신통일세계를 향한 위대한 진군의 발걸음을 내딛읍시다!  (243쪽) 지은이 소개 권 상 기1966년 출생. 고려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한국에서 목회 활동을 하던 중, 1993년 일본으로 건너갔다. 1990년대 초반부터 일본 내 한국의 이미지 제고와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해 한국어 강사 및 한국 문화 전파에 앞장섰다. 특히 재일 민단과 총련, 그리고 일본 사회의 화합을 도모하며 남북통일 운동에 헌신했고, 청년·학생들을 위한 교육 및 장학 사업, 양국 간의 교류 활동을 꾸준히 전개하며 한일 민간 외교의 가교 역할을 해왔다.세계적으로 만연해지는 자국 중심주의와 우경화, 그로 인한 일본 내 혐한 문제와 약자를 향한 차별 및 증오의 근본적인 해결책을 깊이 고뇌해 왔다. 그 해답으로 통일원리에 기초한 ‘공생(共生)·공영(共榮)·공의(共義)주의’에 주목하여 이를 깊이 연구하고 있으며, 진정한 평화 세계 구현을 위한 실천적 활동에 매진하고 있다.2026년 초, 33년간의 선교사 생활을 갈무리하고 귀국했다. 현재 ‘공생공영공의연구소’를 설립하여 한국을 거점으로 활발한 연구와 평화 운동을 이어가고 있다. 일본인 아내와 사이에 4녀 1남을 두고 있다. 저자 연락처전화 010-6754-3013홈페이지 : https://kjbridge.net이메일 : ksgy2035@gmail.com 차 례 책머리에 / 길 잃은 문명, 그 고통의 역사를 넘어 신통일세계의 아침을 열며 ·4 제1부 구원의 여정과 신학적 토대(이론편) 1. 신론(神論): 심판관의 가면을 벗고 ‘하늘부모님’의 심정(Heart)과 만남 ·142. 창조론(創造論): 창조 이상과 인류에게 부여된 3대 축복과 책임분담 ·213. 타락론(墮落論)과 원죄론(原罪論): 끊어진 사랑의 탯줄, 그리고 하늘부모님의 피눈물 ·284. 구원론(救援論): 십자가 대속과 세례를 넘어, 혈통 전환과 축복으로 여는 구원의 길 ·355. 기독론(基督論): 심판관의 교리를 넘어 ‘참부모’로 오신 구원자 ·436. 예정론(豫定論): 하늘부모님의 눈물겨운 기다림과 플랜 B ·517. 부활론(復活論): 죽음을 넘어 하늘부모님께 나아가는 생명의 길 ·588. 종말론(終末論): 심판의 두려움을 넘어선 희망의 종말론 ·649. 역사론(歷史論): 일반 역사관의 한계와 섭리적 동시성의 법칙 ·72 제2부 이상세계를 향한 역사적 도전과 한계(역사편) 1. 인류 역사의 방향성: 가인·아벨형 인생관의 투쟁을 넘어 통일로 ·802. 종교적 이상향을 향한 인류의 갈구: 맹목적 도그마를 넘어선 섭리의 나침반 ·863. 이상세계를 향한 신앙의 개혁: 종교개혁의 위대한 승리와 교리주의의 한계 ·934. 유물론의 폭주를 막아선 철학적 방파제: 임마누엘 칸트의 ‘아벨형 인생관’ ·1015. 이상사회를 향한 정치·구조적 개척: 크롬웰의 좌절과 몽테스키외의 도전 ·1076. 잃어버린 심정과 영성을 깨우다: 폭스, 웨슬레, 스웨덴보리의 영적 대각성 ·1147. 철학적 이성으로 그려낸 이상향: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와 그 한계 ·1208. 자본주의의 탐욕 속에서 피어난 참사랑의 실험: 로버트 오웬의 ‘뉴래너크’ ·1289. 지상천국의 왜곡과 참극: 원리형 비원리세계로서의 공산주의 ·13510. 천국을 향한 신앙의 방어전: 기독교 사회주의와 가톨릭 사회교리의 전개 ·14211. 체제 생존을 위한 타협과 파탄: 복지국가의 실험과 신자유주의의 그림자 ·148 제3부 이상세계의 실체적 완성: 신통일 세계의 비전(비전편) 1.    복귀섭리로 본 역사의 발전 단계: 투쟁을 넘어선 공생·공영·공의의 도래 ·1562. 자유민주세계의 마지막 보루: 반공(反共)을 넘어 승공(勝共)으로 ·1633. 이념의 종언과 영원한 대안: 두익사상(頭翼思想)과 공생·공영·공의주의 ·1704. 신통일세계의 경제 비전: 만물의 참된 주권과 ‘공생(共生) 경제’의 실현 ·1765. 신통일세계의 정치 비전: 권력 투쟁을 넘어선 ‘공영(共榮)’의 형제주의 정치 ·1826. 신통일세계의 윤리 비전: 절대가치의 회복과 ‘공의(共義)’의 심정문화세계 ·187 제4부 신통일세계의 실체적 안착을 위한 도전과 우리의 사명(실천편) 1. 공생·공영·공의의 맹아(萌芽): 인류의 위대한 공동체 실험과 그 한계 ·1942. 환경 위기 극복과 미래세대: 해양섭리, 선학평화상, 그리고 퓨어워터 ·2003. 심정문화와 기술 평준화: 언론·예술 섭리와 국제과학통일회의(ICUS), 평화고속도로 ·2064. 아벨 유엔(UPF)과 초국가적 평화 연대: 글로벌 거버넌스의 혁신 ·2125. 신통일한국과 세계 평화: 한반도 평화 서밋과 아시아·태평양 유니언(APU) ·2186. 타락 혈통의 청산과 평화의 실체: 교차교체 축복결혼과 참가정 운동 ·2257. 천일국 안착의 최전선: 효정문화와 신(神)종족메시아, 그리고 천보(天寶) 섭리 ·2328. 탕감복귀의 긴 밤을 지나, 신(神)통일세계의 찬란한 아침으로 ·239 주(Notes) ·244부록 및 참고문헌부록 - 통일사상 핵심 용어 해설(Glossary of Key Terms) ·267참고문헌(References) ·270
최고관리자 2026.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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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신통일세계를 여는 새로운 이상사회론, 공생·공영·공의주의란 무엇인가

현대 문명은 역사상 가장 눈부신 물질적 진보를 이루었지만, 동시에 가장 깊은 정신적 공허를 겪고 있습니다. 인공지능과 우주 탐사의 시대를 살아가면서도 우리는 극심한 양극화, 이념 갈등, 기후 위기 앞에서 방향을 잃고 표류하고 있습니다. 달에 우주선을 보내는 기술은 발전시켰으나 이웃과 평화롭게 공존하는 지혜는 찾지 못한 것입니다. 이러한 시대적 위기 속에서 통일원리에 기초한 공생·공영·공의주의는 인류가 나아갈 새로운 이상사회의 청사진으로 제시되고 있습니다. 근대 이성과 유물론의 파산, 그리고 종교의 한계 근대 이후 인류는 종교를 대신하여 이성과 과학을 새로운 신으로 삼았습니다. 계몽주의 사상가들은 인간의 이성이 모든 무지와 폭력을 종식시키고 유토피아를 가져올 것이라 믿었습니다. 니체는 신은 죽었다고 선언하며 인간 스스로 초인이 되어야 한다고 외쳤습니다. 그러나 이성을 맹신한 결과는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홀로코스트라는 참극이었습니다. 마르크스로 대표되는 유물사관은 인간의 불행이 불평등한 경제 구조에 있다고 보고 계급 투쟁을 선동했습니다. 종교를 인민의 아편이라 조롱하며 공산주의 지상낙원을 약속했으나, 그 결과는 1억 명이 넘는 생명을 앗아간 전체주의의 억압이었습니다. 이러한 세속 철학의 파산은 인간을 단지 이성적 기계나 경제적 부속품으로만 취급하고, 인간의 본질적 속성인 심정과 영성을 외면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전통 종교는 왜 이 위기를 해결하지 못했을까요. 기독교는 2천 년간 인류 문명에 위대한 공헌을 했지만, 시대가 변하면서 낡은 문자주의와 배타적 교리는 현대인에게 더 이상 해답을 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의 아버지가 아니라 무자비한 심판관으로 묘사하는 종말론, 우리 교단에만 구원이 있다는 배타적 도그마는 종교를 평화의 매개체가 아니라 분쟁의 원인으로 전락시켰습니다. 통일원리가 제시하는 혁명적 관점, 하늘부모님과 심정 통일원리의 가장 큰 철학적 성취는 우주의 창조주를 두려운 심판관이나 차가운 제1원인자가 아니라, 인류를 끊을 수 없는 혈통으로 품어 안으시는 하늘부모님으로 재발견한 것입니다. 우주를 창조하고 움직이는 가장 근원적인 힘은 권력이나 이성이 아니라, 대상을 향해 무한히 사랑을 베풀고 기쁨을 나누려는 심정입니다. 인류의 비극인 타락은 단순히 과일을 훔쳐 먹은 불순종이 아니라, 부모인 하나님을 배신하고 이기적인 거짓 사랑과 핏줄을 맺은 사랑의 궤도 이탈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인류 역사는 죄인을 벌하는 재판관의 기록이 아니라, 집 나간 자식을 찾아 수천 년을 맨발로 헤매며 피눈물을 흘리신 어머니 하나님의 처절한 복귀의 서사시가 됩니다. 이 심정의 관점을 획득할 때 기독교 신학이 수백 년간 풀지 못했던 선악과의 신비, 예정론의 모순, 십자가의 진실이 명확하게 해명됩니다. 공생·공영·공의주의, 제3의 통일 이념 통일원리는 온 인류가 차별 없이 행복하게 살아가는 이상 공동체 사회의 실체적 청사진으로 공생·공영·공의주의를 제시합니다. 이것은 남북한 양 체제의 단점을 보완하고 참사랑의 남북공동체를 이루는 제3의 유일한 통일방안입니다. 자유민주주의의 자유 남용과 사회주의의 일률적 평등 문제를 하늘부모님의 참사랑 안에서 해결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이념적 토대입니다. 공생의 경제공동체는 이윤 극대화가 아니라 위하여 사는 삶을 제1법칙으로 삼습니다. 내 안의 이기심이라는 암 덩어리를 도려낸 자리에 하늘부모님의 심정을 채워 넣을 때, 인류는 돈의 노예에서 해방되어 만물의 참된 주인이 됩니다. 공영의 정치공동체는 개인의 승진과 실적이 아니라 조직 전체의 공적인 목적을 최우선 기준으로 삼습니다. 동료를 경쟁자가 아닌 한 식구로 여기며 섬김의 리더십과 융합의 원리가 조직에 스며들 때 그곳이 실체적 천일국이 됩니다. 공의주의의 윤리공동체는 흔들리는 세상 속에서 영원히 변치 않는 절대가치를 인류의 가슴속에 세우는 윤리적 선언입니다. 이를 작동시키는 가장 깊은 뿌리이자 무한한 에너지가 되는 것이 바로 효정입니다. 이 세 가지가 하늘부모님을 중심으로 조화롭게 실현될 때 인류는 비로소 신통일세계의 아침을 맞이하게 됩니다. 참부모와 축복, 혈통 전환의 실체적 구원 통일원리는 구원의 최종 목적지가 개인의 십자가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강조합니다. 원죄의 핏줄을 씻어내고 온전한 사랑을 꽃피우는 부부와 참가정의 완성, 즉 축복으로 이어져야만 합니다. 십자가의 승리로 영적 중생의 길은 열렸으나, 육신을 쓰고 실체적인 참가정을 이루는 구원의 궁극적 완성은 재림의 때로 미루어졌습니다. 이것이 재림주께서 구름이 아닌 육신을 쓰고 이 땅에 실체로 다시 오셔야 하는 필연적 이유입니다. 참부모님이 열어주신 축복결혼을 통해 혈통을 전환한 참가정들이 공생의 일터를 가꾸고 부를 나누며 절대 순결의 문화를 전 세계로 확산시켜 나갈 때, 인류의 낡고 병든 역사는 종언을 고하고 하늘부모님이 직접 치리하시는 영원한 평화의 실체 세계가 이 지상 위에 건설됩니다. 역사의 섭리적 동시성과 신통일세계의 도래 통일원리는 역사를 단순한 우연의 반복이 아니라 섭리적 동시성의 법칙으로 설명합니다. 하늘이 세운 중심인물이 책임분담을 다하지 못해 섭리가 실패하면, 하나님은 일정한 탕감 기간 후 다른 중심인물을 다시 세워 똑같은 탕감조건을 세우게 하십니다. 역사는 겉보기에는 제자리를 도는 원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과거의 탕감 기반을 딛고 나선형으로 상승하며 창조목적을 향해 나아갑니다. 과학과 이성을 극대화한 가인형 인생관은 물질적 통일을 완성해 가고 있으나 인간을 소외시키고 이기심의 극치를 달리고 있습니다. 반면 기성 종교로 대표되는 아벨형 인생관은 한계에 부딪힌 채 명확한 이정표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두 인생관은 한쪽이 다른 한쪽을 멸망시킴으로써 끝나지 않습니다. 눈에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를 하나로 묶어줄 완벽한 새 진리인 통일원리가 등장하여 두 사상을 모두 품어 안아야 합니다. 천일국 시대,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 참부모님께서는 메시아로서의 혹독한 책임분담을 처절한 사투 끝에 완수하시고 승리하셨습니다. 이제 그 섭리의 바통은 우리에게 넘어왔습니다. 우리는 운명의 노예가 아닙니다. 자유의지를 무기로 사탄의 굴레를 박차고 일어나, 하늘부모님의 잃어버린 꿈을 내 가정과 내 나라에 실체로 이룩해 낼 위대한 천일국의 운명 개척자들입니다. 하나님은 나를 당신의 거룩한 뜻을 이룰 가장 소중하고 유일무이한 중심인물로 예정하고 부르셨습니다. 그 부르심에 당당히 응답하여 영광스러운 축복의 주인공이 될 것인지는 전적으로 나 자신의 결단과 참사랑의 실천에 달려 있습니다. 매일의 훈독회로 무장하고 천심원의 기도로 영적인 불을 지피며, 내 가정에서 효정의 참사랑을 완성하여 세상을 향해 신종족메시아로 나아가는 것이 복귀섭리의 영광스러운 종착역에 선 우리가 하늘부모님과 참부모님 앞에 올려드려야 할 최후의 승리적 보고서입니다. 탕감복귀의 춥고 힘들었던 어둠의 밤은 이제 완전히 끝났습니다. 역사의 찬란한 동이 트고 있습니다. 하늘부모님 아래 80억 인류가 한 가족으로 얼싸안는 영원한 본향을 향해, 천일국의 당당하고 실체적인 주인으로서 저 찬란한 신통일세계를 향한 위대한 진군의 발걸음을 내딛읍시다.
최고관리자 2026.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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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자유민주세계의 마지막 보루: 반공(反共)을 넘어 승공(勝共)으로

냉전 시대, 반공을 넘어선 새로운 전략의 필요성 20세기 중후반 세계는 무신론적 공산주의와 자유민주주의라는 두 개의 거대한 진영으로 나뉘어 숨 막히는 대결을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공산주의는 단순한 경제 체제가 아니라 하나님을 부정하고 목적을 위해서는 수천만 명의 희생도 정당화하는 유물론적 이념 체계였습니다. 이러한 공산주의의 팽창에 맞서 자유민주진영이 내세운 방어 논리는 오직 반공(反共)뿐이었습니다. 하지만 반공은 공산주의를 적으로 규정하고 무력과 경제 제재로 억제하려는 수동적 방어에 불과했습니다. 총과 칼은 물리적 침략을 막을 수 있어도, 사상에 대한 신념까지 꺾을 수는 없었습니다. 진정으로 사상을 굴복시키려면 무력이 아닌 더 높은 차원의 진리가 필요했습니다. 이러한 시대적 한계 속에서 문선명 총재는 인류 역사에 전례 없는 승공(勝共)이라는 개념을 제시했습니다. 승공은 공산주의자를 적대하여 파멸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무신론적이고 유물론적인 사상적 오류를 철학적으로 밝혀내어 사상 자체는 사멸시키되, 잘못된 이념에 속은 사람들은 진리와 사랑으로 교육하여 구원하겠다는 혁명적 선언이었습니다. 힘으로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진리로 일깨워 자연스럽게 굴복시키겠다는 이 전략은 섭리적 차원의 거대한 사상전의 시작이었습니다. 한반도 최전선에서 시작된 승공운동의 불꽃 승공운동이 가장 먼저 타오른 곳은 자유 진영과 공산 진영이 가장 첨예하게 대치하던 한반도였습니다. 1960년대 후반 북한의 무력 도발이 극에 달하자 1968년 1월 국제승공연합이 창설되었습니다. 이는 단순한 정치 운동이 아니라 통일원리와 통일사상을 바탕으로 마르크스주의의 철학적, 경제적 모순을 체계적으로 해부한 이론 체계를 갖춘 조직이었습니다. 승공연합의 강사들은 전국 곳곳을 누비며 공무원, 군인, 지식인, 학생들을 대상으로 맹렬한 사상 교육을 전개했습니다. 이들의 활동은 조국을 지키는 강력한 영적 방패 역할을 했습니다. 그리고 1975년 6월 7일, 여의도 광장에서 역사적인 구국세계대회가 개최되었습니다. 당시 베트남 패망으로 한반도에 제2의 전쟁 위기가 고조되던 상황에서 전 세계 60여 개국에서 온 청년들과 국내외 신앙인들이 모여 무려 120만 명이라는 경이로운 인파를 이루었습니다. 이 대회에서 "대한민국을 대신해 십자가를 지고 죽겠다"는 비장한 선언이 울려 퍼졌고, 120만의 함성은 하늘을 찔렀습니다. 6·25 전쟁 당시 UN군 16개국이 참전했다면, 여의도 대회는 60개국이 사상적 연합군이 되어 영적 총력전을 펼친 역사적 사건이었습니다. 이는 한반도에 도사리고 있던 침략 음모를 단숨에 굴복시킨 영적 승리의 선포였으며, 전 세계로 뻗어나갈 승공 운동의 튼튼한 뿌리가 되었습니다. 아시아와 미국으로 확산된 사상적 전선 일본은 아시아 공산화의 성패를 가를 중요한 사상적 최전선이었습니다. 전후 패전의 허탈감 속에서 극좌 세력이 대학가와 노동계를 빠르게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만약 일본마저 공산화된다면 한국은 배후의 거대한 보급 기지를 잃고 아시아 전체가 공산주의 수중에 떨어질 위기였습니다. 일본의 청년 학생들은 쇠파이프를 휘두르는 극좌 운동권과 대학 캠퍼스에서 치열한 사상전을 벌이며 좌익의 논리를 정면으로 격파해 나갔습니다. 이 승공의 횃불은 자유민주주의의 수장인 미국으로 건너갔습니다. 1970년대 미국은 베트남 전쟁 패배와 퇴폐 문화 속에서 자신감을 잃고 소련의 팽창 앞에 무기력하게 후퇴하고 있었습니다. "미국이 병들면 세계의 자유가 죽는다"는 절박한 인식 아래 미국의 청교도 건국 이념을 부활시키는 운동이 전개되었습니다. 특히 1982년 미국 주요 언론들이 좌경화되어 소련에 대한 유화 정책만을 고집할 때, 워싱턴 D.C.에 보수 우파 언론인 워싱턴 타임스가 창간되었습니다. 이 신문은 레이건 행정부의 강력한 반공 노선을 전폭 지지하며 미국 지도층이 공산주의 환상에서 깨어나도록 이끄는 강력한 사상적 나침반이 되었습니다. 이후 승공 운동은 남미 대륙의 도미노 적화를 막아낸 카우사 운동으로 이어지며 자유 진영의 거대한 사상적 연대를 완성해 갔습니다 1985년 제네바, 역사를 바꾼 예언적 선언 1980년대 중반 소비에트 연방은 여전히 수만 기의 핵무기를 보유하며 그 위세가 영원할 것만 같았습니다. 당시 미국의 CIA조차 소련 체제의 견고함을 의심하지 않았고, 서구의 어떤 석학도 소련의 붕괴를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1985년 8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세계평화교수협의회 국제회의에서 전 세계를 향한 역사적 선언이 울려 퍼졌습니다. 문선명 총재는 세계 석학들을 모아놓고 "공산주의는 70년을 넘기지 못하고 멸망할 것이다"라고 단언하며 소련의 붕괴와 공산주의의 종언을 발표하게 했습니다. 창조주를 부정하는 무신론적 한계와 비원리성 때문에 필연적으로 자멸할 수밖에 없다는 이 선언은 당시로서는 비웃음을 살 만큼 충격적인 발언이었습니다. 더 나아가 공산주의 붕괴 이후 찾아올 극심한 사상적 진공 상태를 대비해 학자들이 미리 하나님주의에 입각한 평화 세계의 청사진을 준비하라고 촉구했습니다. 이는 세속적 학문이 아닌 섭리의 역사를 꿰뚫어 보는 혜안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예언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현실로 나타났습니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고, 1990년에는 모스크바 크렘린 궁에서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과 역사적 정상회담이 이루어졌습니다. "공산주의는 끝났다. 오직 하나님을 받아들일 때만이 소련이 살길이다"라는 진리의 선언과 함께, 철의 장막의 주인을 원수가 아닌 사랑하는 아들로 받아들이는 역사적 순간이었습니다. 승공의 진정한 의미, 원수까지 품는 참사랑 마침내 예언의 시한인 70년을 넘기지 않은 1991년 12월 25일, 거대한 소비에트 연방은 총성 한 번 제대로 울리지 못한 채 스스로 붉은 깃발을 내리며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하나님을 부정하며 수천만 명의 피를 흘렸던 붉은 광기가 하늘의 진리와 참사랑 앞에 실체적으로 완전히 굴복한 것입니다. 세상은 소련의 붕괴를 자본주의의 압승으로 축배를 들었습니다. 그러나 승자의 오만함 대신 이념 붕괴로 길을 잃고 굶주리는 과거 공산권 국가의 백성들을 구제하기 위해 막대한 자금과 구호물자가 쏟아졌습니다. 이것이 바로 배타적인 반공과 완전히 구분되는 통일원리적 승공의 진정한 위대함입니다. 반공이 원수를 향해 총을 겨누고 담장을 높게 쌓아 철저히 분리하는 것이라면, 승공은 그 담장을 과감히 허물고 뛰어 들어가 병든 원수를 진리로 치료하고 내 형제로 만들어 함께 하늘부모님의 품으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승공운동은 공산주의라는 사상적 전염병을 퇴치한 치열한 사상전이었음과 동시에, 병들어 죽어가던 가인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살려내려 했던 가장 위대하고 처절한 참사랑의 실천이었습니다. 수십 년간 지구촌을 얼어붙게 했던 냉전의 빙하는 두익사상과 피눈물 나는 헌신 앞에서 완전히 녹아내렸습니다. 인류 앞을 가로막고 있던 가장 거대한 이데올로기의 장벽이 무너진 이 승리의 터전 위에서, 이제 진정한 평화 세계 건설을 향한 새로운 여정이 시작되었습니다.
권상기 2026.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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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이념의 종언과 두익사상: 좌우를 넘어 인류 한 가족으로 가는 길

냉전 종식 후 드러난 자본주의의 민낯 1991년 소비에트 연방의 붕괴는 자유민주주의 진영에게 이데올로기 전쟁의 완벽한 승리처럼 보였습니다. 학자들은 역사가 자본주의의 승리로 끝났다고 선언했고, 세계는 새로운 평화의 시대를 맞이할 것처럼 기대에 부풀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낙관론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공산주의라는 거대한 적이 사라지자, 견제 장치를 잃은 자본주의는 통제 불능의 괴물로 변모하기 시작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목격하는 현실은 승리의 환호성과는 거리가 멉니다. 무한 경쟁과 승자독식의 논리가 사회 전반을 지배하면서 극단적인 이기주의와 물질만능주의가 만연하게 되었습니다. 도덕과 윤리는 점차 힘을 잃었고, 인류 사회의 가장 기본적인 단위인 가정마저 붕괴의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공산주의의 폭력적 독재가 사라진 자리에 자본주의의 냉혹한 양극화가 들어선 것입니다. 꺾인 두 날개, 추락하는 인류 역사는 우리에게 냉혹한 진실을 보여줍니다. 평등을 부르짖던 좌익 공산주의는 하나님을 부정하다가 피비린내 나는 폭력 독재로 자멸했습니다. 반면 자유를 수호하던 우익 자본주의는 신앙의 본질을 잃고 이기심에 물들어 형제애가 메말라 가고 있습니다. 새가 하늘을 날기 위해서는 양쪽 날개가 모두 건강해야 하듯이, 인류라는 거대한 새는 두 날개가 모두 상처 입고 찢긴 채 절망의 벼랑 끝으로 추락하고 있습니다. 좌익과 우익이라는 이분법적 이데올로기의 시대는 완전히 그 수명을 다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근본적으로 다른 차원의 해결책을 찾아야 합니다. 단순히 좌우를 절충하거나 타협하는 회색빛 중도 노선으로는 인류의 근본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머리가 이끄는 새로운 비전, 두익사상 새가 균형 있게 날기 위해서는 두 날개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날개를 통제하고 목적지를 향해 방향을 지시하는 머리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이 머리에 해당하는 궁극의 진리가 바로 두익사상입니다. 두익사상은 우주의 중심에 하늘부모님을 모시는 하나님주의를 핵심으로 합니다. 두익사상의 관점에서 보면, 우익은 하늘부모님이 인간에게 주신 개인의 자유와 개성을 대변하고, 좌익은 하늘부모님이 원하시는 만민 평등과 경제적 공유의 이상을 본능적으로 흉내 낸 사상입니다. 두익사상은 이 둘을 적으로 규정하여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부모님의 참사랑을 중심에 세워 둘을 모두 품어 안고 통일하는 화해와 부활의 사상입니다. 마치 아버지가 탕자와 장남을 모두 가슴에 끌어안고 눈물로 사랑하듯, 우익의 교만한 이기심과 좌익의 맹렬한 증오심을 모두 녹여내어 인류 한 가족으로 통일하는 것입니다. 제도가 아닌 혈통의 문제 역사를 돌이켜보면 수많은 천재적인 사상가와 혁명가들이 평화로운 세상을 꿈꾸었지만 번번이 실패했습니다. 그 이유는 명백합니다. 그들은 문제의 근원을 항상 제도의 결함이나 불평등한 경제적 환경에서만 찾으려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섭리적 관점에서 볼 때, 인류가 겪는 모든 전쟁과 착취의 진짜 원인은 외부의 제도가 아니라 인간의 핏줄 속에 흐르는 타락성 본성, 즉 원죄에 있습니다. 아무리 완벽한 이론이 제시되더라도, 그것을 현실에서 실천해야 할 인간 내면의 이기심이 근본적으로 치유되지 않으면 지상천국은 결코 도래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신통일세계를 굳건히 세우기 위한 가장 근본적이고 절대적인 전제 조건은 인류를 사탄의 악하고 이기적인 핏줄에서 끊어내어 하늘부모님의 선하고 이타적인 핏줄로 다시 접붙이는 축복과 혈통 전환입니다. 축복결혼을 통해 원수 된 국가와 인종의 남녀를 핏줄로 맺어 주는 것은 허망한 이념의 논쟁을 근본적으로 종식시킵니다. 흑인과 백인이, 일본인과 한국인이, 자본주의자와 공산주의자가 참사랑 안에서 부부가 되어 자녀를 낳고 피를 섞을 때 이념과 국경의 낡은 벽은 그 즉시 영원히 허물어집니다. 참부모님을 중심 삼고 혈연적으로 하나된 참가정을 이 땅에 무수히 번식시키는 것이야말로 그 어떤 화려한 정치적 혁명이나 헌법 개정보다 강력하고 실체적인 영구 평화의 지름길입니다. 공생·공영·공의주의, 새로운 세계의 청사진 두익사상을 바탕으로 이 땅 위에 실체적으로 건설해 나갈 궁극적인 지상천국의 뼈대가 바로 공생·공영·공의주의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이상론이 아니라 구체적인 사회 시스템의 청사진입니다. 공생주의는 경제적 이상을 담고 있습니다. 자본주의의 피도 눈물도 없는 소수 독점이나 공산주의의 강제적 국유화와 억압을 훌쩍 넘어서는 참사랑의 경제입니다. 하나님을 만물의 참된 주인으로 모시고, 부모가 자식에게 재산을 아낌없이 내어주듯 참사랑의 동기에 의해 자발적으로 부와 기술을 나누며 다 함께 창조본연의 풍요를 누리는 형제주의적 공동 소유 체제입니다. 공영주의는 정치적 이상을 제시합니다. 힘과 권력, 다수결의 횡포로 서로를 무자비하게 짓밟는 패권 정치가 아니라, 부모가 자녀를 돌보듯 따뜻하게 통치하는 참된 민주주의입니다. 인체의 두뇌가 온몸의 장기를 유기적으로 조율하듯, 하늘부모님을 중심으로 입법, 사법, 행정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어 억압받거나 소외되는 사람 없이 모든 인류가 국정에 참여하고 함께 번영하는 참가정 형태의 공동 정치 체제입니다. 공의주의는 윤리적 이상으로 사회를 지탱하는 가장 깊은 정신적 가치입니다. 종교 간의 배타적 교리 투쟁이나 세속적 쾌락주의를 완전히 끝내고, 인류 보편의 가치인 참사랑, 즉 위하여 사는 삶을 절대 윤리로 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모시는 삶의 벅찬 기쁨과 도덕성이 전 사회에 혈관처럼 흐르는 거룩한 심정문화세계를 뜻합니다. 천일국, 인류 한 가족의 꿈이 현실로 공생·공영·공의주의가 온전히 실현되어, 잃어버린 에덴동산이 기나긴 탕감의 역사를 끝내고 이 지상 위에 온전한 실체 국가로 안착한 평화의 나라를 천일국이라고 부릅니다. 두 사람이 참사랑으로 완전히 하나 되어 이룩한 이상적인 나라라는 뜻입니다. 수천 년 동안 인류를 지독하게 괴롭혀 온 전쟁, 굶주림, 양극화, 그리고 무신론적 공산주의의 붉은 망령은 이제 천일국의 벅찬 비전 앞에서 영원히 자취를 감추게 될 것입니다. 승공의 험난한 고개를 피 흘려 넘어온 우리는 이제 낡고 녹슨 이데올로기의 껍데기를 완전히 벗어 던지고, 인류 한 가족의 거룩한 꿈을 이 흙바닥 위에 현실의 제도로 빚어내는 섭리의 새아침을 맞이했습니다. 이념의 시대는 끝났습니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좌우의 날개를 통제하는 머리, 즉 하늘부모님을 중심으로 한 두익사상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구체적으로 실현할 공생·공영·공의주의의 사회 시스템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이념을 넘어선 영원한 대안이며, 인류가 나아가야 할 유일한 길입니다.
권상기 2026.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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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신통일세계의 경제 비전: 만물의 참된 주권과 ‘공생(共生) 경제’의 실현

만물의 진정한 주인은 누구인가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는 20세기를 지배한 두 거대한 이념이었습니다. 그러나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극심한 빈부격차와 공산주의가 초래한 획일적 국유화는 모두 인류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습니다. 이 두 체제가 공통적으로 범한 가장 근본적인 오류는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바로 만물의 진정한 소유권이 누구에게 있는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을 간과했다는 점입니다. 자본주의는 만물이 온전히 개인의 소유라고 주장하며 무한한 소유욕과 독점을 정당화했습니다. 반면 공산주의는 모든 것이 국가와 당의 소유라며 폭력적으로 재산을 몰수했습니다. 하지만 통일원리의 창조관에 따르면,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물질과 자원의 궁극적인 소유권은 창조주이신 하늘부모님께 있습니다. 인간은 만물의 절대적 소유주가 아니라, 하늘부모님을 대신하여 만물을 참사랑으로 가꾸고 관리하는 청지기로 창조되었습니다. 부모가 자식들을 사랑하여 풍요로운 집을 마련했는데, 한 자녀가 힘이 세다는 이유로 모든 것을 독점하고 다른 형제들을 내몬다면 부모의 마음은 어떠하겠습니까? 타락한 이기심으로 만물을 독점하고 이웃의 고통을 외면하는 이 소유권의 왜곡이야말로 인류가 겪는 모든 경제적 불평등과 비극의 가장 깊은 뿌리입니다. 참사랑에 기초한 공생 경제의 원리 참부모님께서 제시하신 신통일세계의 경제 모델인 공생주의는 이 소유권 문제를 차가운 법 제도가 아닌 뜨거운 심정으로 풀어냅니다. 공생주의는 공산주의처럼 개인의 사유재산을 강제로 빼앗는 폭력적 체제가 아닙니다. 오히려 인간의 창의성과 노력에 따른 정당한 소유는 인정하되, 그 부를 축적하는 목적과 사용하는 동기가 하늘부모님의 뜻과 형제애에 맞추어지는 형제주의 경제를 의미합니다. 참부모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것이라고 하는 소유의 관념이 타락의 기원이며, 하나님의 참사랑 안에서는 네 것과 내 것의 경계가 무너진다고 하셨습니다. 참사랑으로 하나 된 가정에서는 부모의 것이 자식의 것이고, 자식의 것이 부모의 것입니다. 따라서 우주의 소유권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는 그 만물을 형제들을 위해 사랑으로 관리하는 관리자가 되어야 합니다. 나에게 남보다 더 많은 재물과 뛰어난 기술이 주어졌다면, 그것은 나 혼자 잘살라는 뜻이 아니라 그 능력을 발휘해 가난한 형제들을 돕고 섬기라는 하늘의 축복이자 책임입니다. 핏줄로 연결된 참된 부모와 자식 간에는 내 지갑과 네 지갑의 구분이 무의미하듯, 하나님을 중심 삼은 참가정의 심정이 사회 전체로 확대되면 사람들은 법의 강제 없이도 자발적으로 부를 나누게 됩니다. 이것이 참사랑에 바탕을 둔 자본의 사유와 사용의 공유라는 공생 경제의 핵심 원리입니다. 기술 평준화를 통한 전 지구적 공생 실현 공생 경제가 일국의 경계를 넘어 전 지구적으로 실현되기 위해 참부모님께서 가장 강력하게 역설하신 방안 중 하나가 바로 기술의 평준화입니다. 오늘날 선진국의 거대 자본과 다국적 기업들은 첨단 기술과 배타적인 특허권을 무기로 개발도상국을 경제적으로 종속시키고 막대한 이윤을 독식하고 있습니다. 과학 기술이 인류를 구원하는 도구가 아니라 소수를 위해 다수를 착취하는 무기로 전락한 것입니다. 신통일세계에서 과학 기술은 인류 전체의 무지를 깨우치고 절대 빈곤을 해결하기 위해 하늘이 내려주신 공적인 선물입니다. 참부모님께서는 독일의 앞선 기계 기술을 일본이 받아들이고, 이를 다시 한국과 세계의 개발도상국에 조건 없이 전수하여 전 지구촌이 함께 잘사는 기술 평준화 시대를 열어야 한다고 주창하셨습니다. 기술의 이기적인 독점을 풀고 지식과 산업 인프라를 형제의 나라들과 아낌없이 공유하여, 지구촌 어디서나 굶주리는 자식 없이 모두가 균등하고 풍요로운 생활 수준을 누리게 하는 것이 선진국이 개발도상국을 향해 마땅히 베풀어야 할 가장 거룩한 참사랑의 실천입니다. 바다와 국경을 넘은 공생 경제의 실천 참부모님께서는 이 공생의 비전을 단순한 이론으로만 남겨두지 않으셨습니다. 일생을 바쳐 전 세계 현장으로 달려가 실체적인 모델을 피와 땀방울로 보여주셨습니다. 장차 닥쳐올 인류의 식량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차디찬 알래스카 코디악의 거친 바다와 남미 판타날의 오지를 직접 개척하시며 거대한 해양 섭리를 전개하셨고, 그곳에서 얻은 해양 기술과 자본을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빈민들을 구호하는데 아낌없이 쏟아부으셨습니다. 또한 이기적인 국가 간의 닫힌 국경을 허물고 전 인류를 하나의 거대한 경제권으로 묶어내기 위해 국제평화고속도로와 한일해저터널, 베링해협 프로젝트를 전 세계에 제창하셨습니다. 물자와 사람, 그리고 기술이 대동맥의 피처럼 자유롭게 오가는 길을 뚫어, 지구상의 부가 선진국 한 곳에만 고여 썩지 않고 전 세계의 굶주리는 심장부로 힘차게 흐르게 하려는 위대한 공생의 글로벌 인프라 건설이었습니다. 일상 속에서 시작되는 위하여 사는 경제학 지구촌을 아우르는 이 공생주의는 결국 우리 각자의 평범한 일상 속 지갑에서부터 그 위대한 첫걸음이 시작됩니다. 내가 오늘 땀 흘려 일하고 돈을 버는 목적이 단순히 나와 내 가족만의 안락함에 갇혀 있다면, 그것은 여전히 타락한 자본주의의 이기적인 굴레를 조금도 벗어나지 못한 것입니다. 반면 내가 직장에서 헌신하고 기업을 경영하며 월급을 모으는 궁극적인 목적이 가난한 이웃을 이롭게 하고 하늘부모님의 뜻을 이 어두운 세상에 펼치기 위함이라면, 나의 세속적인 경제활동은 그 순간 거룩한 예배이자 공생 경제의 위대한 실천으로 승화됩니다. 참부모님께서는 먹고 남아서 주는 것은 참사랑이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배고프고 턱없이 부족할 때, 내 입에 들어갈 몫을 기꺼이 덜어 가난한 형제에게 내어주는 것만이 진짜 참사랑입니다. 신통일세계의 경제는 이윤의 극대화가 아니라 위하여 사는 삶을 제1의 절대 법칙으로 삼습니다. 내 안에 똬리를 튼 이기심이라는 암 덩어리를 도려낸 자리에 하늘부모님의 심정을 온전히 채워 넣을 때, 인류는 비로소 돈의 노예에서 해방되어 만물의 참된 주인이자 주관자가 될 것입니다. 이러한 숭고한 참사랑과 공생의 경제적 토대 위에서만이 비로소 다툼과 억압이 없는 평화로운 정치, 즉 공영의 정치가 활짝 꽃피울 수 있습니다. 공생 경제는 단순히 경제 체제의 변화가 아니라 인류의 심정을 근본적으로 전환시키는 위대한 혁명입니다.
권상기 2026.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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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신통일세계의 정치 비전: 권력 투쟁을 넘어 선 ‘공영(共榮)’의 형제주의

권력 투쟁으로 얼룩진 현대 민주주의의 그늘 절대 군주제와 독재를 무너뜨리고 등장한 민주주의는 인류 정치사에서 가장 큰 진보로 평가받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성숙했다고 평가받는 현대 민주주의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또 다른 형태의 투쟁과 분열이 깊숙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현대의 선거는 국민의 뜻을 하나로 모으는 화합의 장이 아닌,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상대방을 헐뜯고 짓밟는 패권 투쟁의 장으로 변질되었습니다. 다수결의 원칙은 겉으로는 합리적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51%의 다수가 49%의 소수를 무시하고 권력과 이권을 독점하는 다수의 횡포를 낳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이념과 지역으로 파벌을 나누고, 다음 선거 승리만을 위해 끊임없이 대립하며 보복극을 펼치는 현대 정치의 모습은, 인류가 본래 지향해야 할 화합과 공존의 가치와는 거리가 멉니다. 절대적 가치의 중심을 잃어버린 민주주의는 결국 인간의 이기심과 권력욕을 극대화하는 세속적 투쟁의 도구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공영주의가 제시하는 형제주의 정치의 원리 신통일세계의 정치 비전인 공영주의는 만인이 함께 뜻을 모아 국정에 참여하는 공동정치의 형식을 띱니다. 외형적으로는 대의민주주의와 유사해 보일 수 있으나, 그 작동 원리와 근본적인 심정의 차원에서 완전히 다른 체계를 갖추고 있습니다. 공영 정치의 핵심은 민주주의의 다수결 원칙이 필연적으로 동반하는 투쟁을 근본적으로 해소하는 데 있습니다. 형제가 서로 다투어 권력을 쟁취하고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참부모를 중심으로 형제자매가 화합하여 이웃을 위해 봉사할 대표를 기쁜 마음으로 추대하는 것이 참된 공영 정치의 본질입니다. 이러한 공영 정치는 세 가지 핵심적인 차이를 통해 기존 민주주의와 구별됩니다. 첫째, 입후보자들의 관계성이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선거에 나서는 후보들은 권력을 다투는 정적이 아니라, 참사랑을 터로 하고 메시아를 인류의 참부모로 모시는 가족적 형제자매입니다. 따라서 상대를 짓밟아 내가 당선되려는 이기적인 투쟁심 자체가 원천적으로 존재할 수 없습니다. 둘째, 출마의 동기가 완전히 다릅니다. 입후보자들은 자신의 헛된 명예나 권력욕에 따라 출마하는 것이 아니라, 평소 일상과 조직 속에서 보여준 높은 덕망과 헌신적인 섬김을 지켜본 이웃들의 자발적이고 존경 어린 천거에 의해 후보로 겸허히 추대됩니다. 셋째, 투표와 추첨의 거룩한 결합이 이루어집니다. 선거는 타락한 인간의 다수결이나 여론몰이에만 전적으로 의존하지 않습니다. 투표 방식의 토대 위에, 초대 교회의 사도들이 맛디아를 선출할 때처럼 엄숙한 기도와 섭리적 의식이 수반되는 추첨 방식이 결합되어 최종적으로 치러집니다. 이는 인간적인 파벌 싸움과 선거 부정을 원천 차단하고, 최종 의사결정에 하늘의 뜻이 직접 개입할 수 있도록 내어드리는 가장 겸허하고 신성한 참정권의 행사입니다. 천부주의를 중심한 인류 한 가족의 통치 체계 공영주의의 공동정치는 분열된 이익 집단들의 각축전이 아니라, 전 세계가 하나로 통일된 메시아 왕국의 정치이기 때문에 참사랑을 중심한 진정한 화합의 정치가 됩니다. 하나님을 실체적으로 대신하는 메시아를 참부모로 모시고, 만인은 그 부모의 참사랑을 핏줄로 이어받은 형제자매의 입장에서 국가와 세계를 화기애애하게 경영합니다. 부모 앞에서는 잘난 자식도 못난 자식도 모두 품어주어야 할 사랑의 대상일 뿐입니다. 이러한 공동정치는 인류의 참부모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형제를 위한, 형제에 의한, 형제의 정치입니다. 따라서 이것은 단순히 주권이 국민에게 있다는 좁은 의미의 세속적 민주주의를 훌쩍 뛰어넘어, 우주의 창조주인 하늘부모님을 진정한 부모로 모시는 천부주의를 중심한 완벽한 형제주의 정치로 승화됩니다. 일상 속에서 실현되는 공영의 원리 형제주의 정치의 비전은 비단 국가 차원의 정치인들만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인체의 위장과 심장이 뇌의 명령에 따라 온몸을 살리기 위해 유기적으로 협력하듯,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하는 수많은 조직 관리와 의사결정의 현장에서도 이 공영의 원리는 사위기대의 형태로 실체화되어야 합니다. 기업이나 조직의 관리를 위해 새로운 경영 지침을 세우는 워크숍을 준비하거나, 핵심적인 조직 프로젝트 과제를 기획하여 회의에서 의견을 조율해야 하는 상황을 생각해 봅시다. 만약 부서 이기주의를 내세워 내 기획안만이 무조건 채택되어야 한다고 고집하거나, 상대방의 평가 자료를 깎아내려 나의 실적만을 돋보이게 하려 한다면 그것은 낡은 패권 정치의 축소판일 뿐입니다. 하지만 공영의 원리가 적용된 회의장에서는 차원이 완전히 다릅니다. 워크숍 자료나 여러 프로젝트 제안서들을 평가할 때, 나의 승진과 실적을 중심에 두는 것이 아니라 이 안건들이 조직 전체의 공적인 목적을 어떻게 조화롭게 실현할 것인가를 최우선 기준으로 삼습니다. 동료를 밟고 일어서야 할 경쟁자가 아닌 한 식구로 여기며 그의 아이디어를 진심으로 지지하고 부족한 점을 내 능력으로 보완하여, 그 융합된 최종 프로젝트의 성과를 내 개인의 공로가 아닌 조직 전체의 공영과 기쁨으로 돌리게 됩니다. 가장 높은 직급에 있으면서도 만인을 위해 가장 낮은 곳에서 땀 흘리는 섬김의 리더십과, 이웃의 의견을 존중하고 융합하는 공영주의의 원리가 조직의 구석구석에 스며들 때, 바로 그 회의실과 사무실이 가장 작은 실체적 천일국이 됩니다. 이기적 독점을 끝낸 경제적 토대와 파벌 투쟁을 마감한 형제주의 정치의 굳건한 기반 위에, 인간의 마음과 영혼을 절대가치로 영원히 묶어줄 궁극의 정신문화가 필요합니다. 신통일세계 비전은 공생, 공영, 그리고 공의의 윤리라는 세 기둥 위에서 비로소 완성됩니다.
권상기 2026.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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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신통일세계의 윤리 비전: 절대가치의 회복과 ‘공의(共義)’의 심정문화세계

가치관 붕괴 시대,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현대 사회는 놀라운 과학기술의 발전과 물질적 풍요를 누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화려한 외피 아래에는 치명적인 균열이 자라나고 있습니다. 바로 가치관의 붕괴입니다. 신을 잃어버린 세속 사회는 영원불변하는 절대적 진리를 부정하며, 모든 것을 각자의 상황과 입장에 따라 다르게 해석하는 극단적인 도덕적 상대주의에 빠져들었습니다. 선과 악의 기준이 무너진 사회에서는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이중 잣대가 횡행합니다. 인류의 영혼을 이끌어야 할 종교조차 절대가치를 상실한 채 맹목적인 배타성에 갇혀 분쟁과 테러의 불씨가 되고 있습니다. 아무리 훌륭한 경제 제도를 만들고, 완벽한 정치 체제를 구축한들, 그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올바른 윤리와 도덕적 나침반이 서 있지 않다면 그것은 모래 위에 지은 집과 같습니다. 하늘부모님이라는 공통된 선의 절대 기준이 무너진 사회에서는, 제아무리 촘촘한 법과 감시망을 동원해도 끝없이 솟아나는 인간의 탐욕과 범죄를 결코 막아낼 수 없습니다. 외적인 제도의 완성은 반드시 내적인 심정과 윤리의 완성으로 뒷받침되어야만 합니다. 공의주의와 효정: 영원한 절대가치의 회복 신통일세계의 세 번째 비전인 공의주의는 흔들리는 세상 속에서 영원히 변치 않는 절대 가치를 인류의 가슴속에 굳건히 세우는 위대한 윤리적 선언입니다. 이 공의주의를 작동시키는 가장 깊은 뿌리이자 무한한 에너지가 되는 것이 바로 효정입니다. 우주의 근본 질서는 절대가치인 하늘부모님의 참사랑입니다. 이 절대가치는 머리로 아는 것이 아니라 심정으로 통하는 것입니다. 하늘부모님을 나의 친부모로 모시고 눈물로 위로해 드리고자 하는 절대적인 자녀의 심정, 그것이 바로 효정입니다. 이 효정의 뿌리가 내려져야만 형제를 내 몸처럼 사랑하는 진정한 평화가 싹트게 됩니다. 서구 철학이 말하는 정의가 단순히 개인 간의 권리와 의무, 법적인 잘잘못을 따지는 차가운 수평적 개념이라면, 천주적인 공의는 만민의 부모이신 하늘부모님을 향한 뜨거운 효도의 심정이 이웃과 형제애로 웅장하게 확대된 개념입니다. 자식이 부모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공경하면, 부모가 굳이 회초리를 들지 않아도 자식은 스스로 형제와 다투지 않고 맛있는 것을 양보하며 나눕니다. 하늘부모님을 향한 눈물겨운 효정이 내 안에 바로 설 때, 비로소 타인을 위해 기꺼이 희생하고 봉사하는 위하여 사는 삶이 억울한 의무가 아닌 벅찬 기쁨이 됩니다. 효정은 모든 윤리의 수직적 중심축이며, 이 축이 바로 설 때 비로소 사회적 공의라는 수평적 평화 질서가 완벽하게 완성됩니다. 참가정과 4대 심정권: 사랑의 학교 공의주의 윤리와 효정의 절대가치는 학교의 교과서나 차가운 지식으로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오직 참가정이라는 따뜻한 심정의 학교, 실천의 훈련장에서만 온전히 길러집니다. 가정은 인간이 태어나 하늘부모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실체적으로 체험하고 체휼하는 유일하고도 거룩한 장소입니다. 인간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가정 안에서 4대 심정권을 거치며 사랑의 품격을 완성해 나갑니다. 먼저 자녀로서 부모의 헌신적인 사랑을 받으며 자라나, 그 은혜에 감사하고 부모를 기쁘게 해드리고자 하는 순수하고 절대적인 효의 심정을 배웁니다. 다음으로 형제자매 사이에서 부모의 사랑을 중심 삼고, 나와 다른 형제들과 부대끼며 맛있는 것을 나누고 양보하며 위로하는 끈끈한 우애와 사회성을 다집니다. 이후 부부로서 전혀 다른 환경에서 자란 남녀가 만나 뼈와 살이 하나되는 참사랑을 나누며, 하늘부모님의 창조성을 이어받아 새로운 생명의 잉태를 준비합니다. 마침내 부모가 되어 낳은 자식을 위해 밤을 새우고 내 살과 피를 아낌없이 내어주는 절대사랑, 조건 없는 헌신을 통해 비로소 우주를 품으시는 하늘부모님의 애달픈 심정을 실체로 체휼하게 됩니다. 이 4대 심정권을 거치며 모난 이기심이 깎여나가고 온전히 완성된 효정은, 훗날 사회로 나가 국가를 위기에서 구하는 충성심이 되고, 온 인류를 긍휼히 여기며 구원하는 성인의 거룩한 박애 정신으로 세계화됩니다. 내 작은 가정에서 부모를 극진히 모시는 효정이 곧 전 우주를 품어 안는 공의의 실체가 되는 것입니다. 효정의 조직 문화: 경영 현장에서의 실천 공의의 윤리와 효정의 철학은 종교적인 영역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그것은 오늘날 치열한 조직 관리와 기업 경영의 현장에서도 가장 강력한 시너지와 생명력을 발휘합니다. 특히 조직의 경영 지침을 구체적으로 실천하기 위해 핵심적인 프로젝트 기획안을 도출해야 하는 워크숍이나 회의 현장에서, 효정의 철학은 혁신적이고 실천적인 지침이 됩니다. 효정적 리더십에서 리더는 지위를 무기로 부하 위에 군림하며 명령하는 권력자가 아닙니다. 하늘부모님을 대신하여 구성원들의 고충을 듣고, 그들의 영적·물적 성장을 사랑으로 돌보고 책임지는 부모의 심정을 지녀야 합니다. 새로운 프로젝트를 기획할 때는 동기의 공의성을 점검합니다. 이 일이 나의 승진이나 우리 부서만의 이기적인 이익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전체 조직의 발전과 하늘의 뜻을 기쁘게 해드리는 효도의 길인지를 가장 먼저 준엄하게 묻습니다. 회의에서 제안된 동료들의 안건을 평가할 때는 형제주의적 협력의 정신이 필요합니다. 상대의 아이디어를 깎아내려야 할 라이벌의 것으로 보지 않고, 형제자매를 돕는 마음으로 그의 제안을 경청하며, 서로의 기획안이 가진 장점을 융합하고 단점을 덮어주어 조직 전체를 살리는 최상의 결과물을 함께 도출해 냅니다. 이처럼 거창한 정책뿐만 아니라, 매일의 경영 지침 수립과 작은 프로젝트 기획안 하나를 낼 때에도 효정이라는 절대가치의 기준을 적용할 때, 기업과 조직은 차가운 이익 집단을 넘어 사회에 따뜻한 빛을 비추는 거룩한 심정적 공동체로 다시 태어나게 됩니다. 심정문화세계의 도래: 천일국의 완성 이로써 신통일세계의 웅장한 3대 비전이 완벽하게 결속됩니다. 물질의 이기적 독점을 끝내고 형제와 나누는 공생의 경제, 다수결의 횡포와 권력 투쟁을 마감하고 참된 섬김으로 화합하는 형제주의 정치인 공영, 그리고 하늘부모님을 향한 효정을 깊은 뿌리로 삼아 참사랑의 절대가치를 굳건히 세운 공의의 윤리가 하나로 어우러집니다. 이 위대한 삼박자가 우리의 일상 속에서 완벽한 조화를 이룰 때, 인류는 무지와 거짓, 피비린내 나는 투쟁의 역사를 영원히 끝내고 마침내 하늘부모님을 모시고 기쁨으로 노래하며 살아가는 심정문화세계로 진입하게 됩니다. 차가운 이데올로기의 상처와 꺾인 인류의 두 날개는, 이제 이 뜨거운 효정의 용광로 속에서 말끔히 치유되어 우주로 비상할 것입니다. 동방의 작은 나라 한반도에서 솟아오른 두익사상의 찬란한 빛이 전 세계의 어둠을 몰아내며 비추고 있습니다. 오직 참부모님을 통해 하늘부모님 아래 인류가 한 가족으로 얼싸안는 영원한 지상천국, 천일국의 눈부신 실체가 마침내 우리 눈앞에 그 장엄하고도 찬란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권상기 2026.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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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복귀섭리로 본 역사의 발전 단계: 투쟁을 넘어선 공생·공영·공의의 도래

유물사관이 그린 역사의 종착점, 그 치명적 허점 인류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발전해 왔습니다. 문명의 수레바퀴가 굴러온 이 긴 여정의 끝에는 과연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요? 19세기 카를 마르크스는 이 질문에 대해 매우 명쾌한 답을 제시했습니다. 그는 인류 역사를 물질적 생산 수단의 소유를 둘러싼 계급 투쟁의 연속으로 파악하며, 유물사관에 기초한 역사 발전 5단계설을 주장했습니다. 마르크스의 이론에 따르면 인류는 평등했던 원시 공산사회에서 출발하여 고대 노예제 사회와 중세 봉건제 사회를 거쳐 자본주의 사회에 도달했습니다. 그리고 자본주의는 내부 모순으로 인해 필연적으로 붕괴하며, 프롤레타리아의 폭력 혁명을 통해 완전한 평등을 구현하는 공산주의 사회가 도래한다는 것입니다. 이 이론은 착취와 빈곤에 시달리던 수많은 이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로 다가왔습니다. 그러나 20세기 역사는 이 달콤한 약속이 수천만 명을 학살한 전체주의의 참극으로 귀결되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당대 최고의 지성인들조차 이 이론을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것으로 받아들였을까요? 그 이유는 마르크스의 이론이 진정한 역사 발전의 형식을 교묘하게 모방했기 때문입니다. 타락으로 인해 주도권을 쥔 사탄은 하늘부모님께서 펼치시려는 복귀섭리의 발전 공식을 미리 도용하여, 무신론적 가짜 역사를 전개했던 것입니다. 마르크스가 본 역사의 단계들은 실제 섭리를 왜곡하여 모방한 그림자에 불과했습니다. 복귀섭리로 본 진정한 역사 발전의 궤적 타락으로 인해 영적 무지와 육적 무지에 빠진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하늘부모님은 멈추지 않고 섭리를 전개해 오셨습니다. 내적으로는 종교를 세워 이기적인 마음을 닦게 하셨고, 외적으로는 과학과 경제를 발전시켜 파괴된 환경을 복구해 오셨습니다. 이 두 갈래의 발전을 바탕으로 하나님은 시대마다 의로운 중심인물을 세워 하늘편의 주권을 점진적으로 넓혀 오셨습니다. 첫 번째 단계는 하늘편 씨족사회입니다. 사탄을 중심한 원시 공동사회가 분열하고 타락의 늪에 빠졌을 때,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시어 하늘의 뜻을 받드는 이스라엘 씨족사회를 세우셨습니다. 신약 시대에도 예수님은 열두 제자와 70문도를 중심으로 핍박 속에서 기독교 씨족사회를 형성하며 새로운 구원의 기반을 마련하셨습니다. 두 번째 단계는 하늘편 봉건사회입니다. 씨족이 번성하여 부족이 되면, 사탄 세계의 침범을 막기 위해 튼튼한 영토와 강력한 주종 관계로 뭉친 방어선이 필요해집니다. 구약의 사사 시대나 신약 이후 중세 유럽의 기독교 봉건사회가 이에 해당합니다. 이 시기 백성들은 영주와 성직자에게 순종하며 사탄의 외적 침입을 막아내는 신앙적 결속력을 다졌습니다. 세 번째 단계는 하늘편 통일군주사회입니다. 흩어진 봉건 영지들을 통합하여 광대한 영토와 강력한 국가 주권을 세워야만, 장차 오실 메시아를 온 세계가 안전하게 모실 수 있는 기반이 완성됩니다. 구약시대 다윗과 솔로몬 왕으로 이어지는 통일 왕국시대나, 중세 교황 레오 3세가 카롤루스 대제에게 황제의 관을 씌워 이룩했던 기독왕국시대가 바로 이 단계입니다. 군주제의 타락과 아벨형 민주주의의 필연적 탄생 그러나 통일왕국의 군주와 교황들은 세속적 권력의 탐욕에 눈이 멀어 섭리적 사명을 망각했습니다. 하늘부모님께서 메시아를 모시기 위해 세워주신 절대 왕정이, 오히려 백성들의 신앙과 자유를 짓밟고 권력을 독점하는 전제군주제로 변질되어 버린 것입니다. 부패한 왕조와 독재 치하에서는 결코 인류를 해방할 참부모님을 자유롭게 모실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타락한 군주사회를 철저히 깨뜨리고, 국가의 주권을 백성 개개인에게 돌려주어 그들이 스스로의 양심과 자유의지로 다가올 메시아를 찾아 모실 수 있도록 새로운 제도를 준비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민주주의입니다. 영국의 청교도 혁명이나 미국의 독립 혁명은 단순한 이권 투쟁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부패한 가인적 군주로부터 신앙의 자유를 확보하기 위해 피 흘려 싸운 아벨형 민주주의의 탄생이었습니다. 인류는 이 민주주의의 터전 위에서 마침내 억압받지 않고 참부모님의 진리를 듣고 스스로 결단할 수 있는 언론과 양심의 자유를 획득하게 되었습니다.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하늘편 사회주의의 열망 그러나 하늘부모님의 구원 섭리는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달성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아벨형 민주주의는 독재자를 몰아내고 자유를 쟁취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그 자유를 하나로 묶어줄 참된 중심을 잃어버렸기에 오늘날 극단적인 이기주의와 끝없는 당파 싸움의 온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과학의 발달로 이룩한 자본주의 역시 인류에게 거대한 물질적 부를 안겨주었으나, 이웃을 형제로 여기지 않는 탐욕 탓에 승자독식과 빈부격차의 지옥을 낳았습니다. 하늘부모님의 따뜻한 심정으로 볼 때, 어느 자식은 부를 독점하여 호의호식하고 어느 자식은 길거리에서 굶어 죽어가는 냉혹한 자본주의의 현실은 결코 창조본연의 이상이 아닙니다. 아무리 타락한 인간이라 할지라도 그 깊은 본심은 정치적 자유를 넘어, 80억 인류 모두가 굶주림과 차별 없이 풍요를 누리는 경제적 평등 체제를 요구하게 마련입니다. 인류의 이 본심적 갈망이 도달해야 할 다음 단계가 바로 하늘편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것입니다. 사탄은 인간의 이러한 이타적 본심이 깨어날 것을 미리 알고, 무신론적 유물론으로 포장된 가짜 사회주의인 공산주의를 앞질러 세워 세상을 혼란에 빠뜨렸습니다. 공생·공영·공의로 완결되는 역사의 최종 목적지 인류 역사는 가난했던 원시 공동사회로 퇴보하는 것도, 약육강식의 자본주의 무한 경쟁에 머무르는 것도 아닙니다. 수천 년 역사의 모든 투쟁이 마침내 도달해야 할 최종 목적지는 좌우 이데올로기의 종언을 선언하는 두익사상, 즉 하나님주의의 안착입니다. 종교와 과학, 정신과 물질이라는 두 갈래로 나뉘어 발전해 온 역사의 수레바퀴는 마침내 참부모님이 주창하신 공생·공영·공의의 섭리적 비전 안에서 완전한 통일의 꽃을 피웁니다. 이 비전은 단순히 외적인 제도를 뜯어고치는 것이 아닙니다. 자본주의가 낳은 경제적 착취와 빈부격차를 하늘부모님의 참사랑으로 녹여내어 만물이 본연의 주인을 찾아 생명력을 회복하는 경제적 조화인 공생을 이루고, 권력 쟁취를 위해 피 터지게 싸우던 투쟁적 민주주의의 한계를 극복하여 모든 국가와 백성이 형제애로 통치에 참여하는 정치적 화합인 공영을 완성하는 것입니다. 나아가 이기주의와 타락성으로 얼룩진 인류의 도덕을 절대적인 위하는 삶으로 정화하여 윤리적 심정문화인 공의를 이룩하는 여정입니다. 이는 과거의 모든 낡은 체제가 품었던 선한 갈망들만을 섭리적 용광로에 녹여 역사 발전의 찬란한 종착역으로 빚어낸 것입니다. 그러나 이 눈부신 지상천국이 현실의 토양 위에 완전한 닻을 내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넘어야 할 섭리적인 마지막 고개가 남아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사탄이 만들어낸 가짜 평등의 세계, 무신론적 유물론으로 무장하고 전 세계를 집어삼키려 했던 공산주의와의 우주적 최후 결전이었습니다. 참부모님께서는 이 하늘편의 이상세계가 안착하기 직전 붉은 공산주의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세계를 지켜내시고, 나아가 그 원수들마저 칼이 아닌 참사랑의 진리로 품어 굴복시키셨습니다.
권상기 2026.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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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인류가 꿈꾼 이상 공동체, 키부츠부터 포콜라레까지의 실험과 한계

인류는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완전한 평화와 평등의 공동체를 꿈꾸어 왔습니다. 하늘부모님을 중심으로 인류가 한 가족처럼 살아가는 공생·공영·공의의 세계는 단순한 철학적 이상이 아니라, 인간 본심 깊은 곳에 새겨진 강렬한 영적 갈망입니다. 실제로 근현대사에는 탐욕스러운 자본주의와 폭력적인 공산주의를 거부하고 참사랑의 공동체를 실현하려 했던 눈물겨운 실험들이 존재했습니다. 이들은 비록 완전한 결론에 도달하지는 못했지만, 공생·공영·공의가 현실에서 어떻게 작동할 수 있는지를 증명한 위대한 맹아였습니다. 사막에 세운 평등의 꿈, 키부츠의 빛과 그림자 20세기 초 유대인들이 이스라엘 땅에 세운 집단 농장 공동체 키부츠는 공생 경제의 가장 철저한 실험이었습니다. 척박한 사막을 개간하며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분배받는다는 원칙을 실현했습니다. 사유재산을 전면 폐지하고 자녀 양육과 교육을 공동체가 전담했으며, 직접 민주주의를 통해 계급 없는 평등 사회를 구축하려 했습니다. 초기 키부츠는 극한의 시련 속에서도 형제애적 연대를 통해 엄청난 경제적 성공과 국가 재건의 기적을 일구어 냈습니다. 그러나 20세기 후반 들어 뼈아픈 위기에 봉착합니다. 이들의 평등은 하나님을 향한 절대적 영성에 뿌리를 둔 것이 아니라, 시온주의와 사회주의라는 인간 중심 이념에 묶여 있었기 때문입니다. 세대가 교체되고 이스라엘 사회가 자본주의로 급격히 편입되자, 영적 동력을 상실한 후손들은 이기심과 개인주의의 유혹을 이기지 못했습니다. 결국 오늘날 대다수 키부츠는 사유재산을 인정하고 기업화되는 등 세속화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이는 절대 중심이 없는 제도적 공생이 얼마나 허망하게 무너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반면교사입니다. 초대 교회의 영성을 되살린 브루더호프 키부츠의 세속화가 보여준 한계를 영적으로 극복해 낸 곳이 바로 기독교 아나뱁티스트 전통의 브루더호프 공동체입니다. 1920년 독일에서 에버하르트 아놀트에 의해 시작된 이들은 예수님의 산상수훈과 초대 교회의 절대적 사랑을 현실에서 그대로 살아내고자 했습니다. 브루더호프는 철저한 무소유를 실천하며 자동차부터 수입까지 모든 것을 공동으로 나눕니다. 그러나 이들을 지탱하는 힘은 이념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절대 신앙입니다. 특히 브루더호프는 현대 사회의 이혼과 성적 타락을 철저히 배격하고, 남녀의 순결과 평생의 헌신을 약속하는 가정을 공동체의 가장 거룩한 기초로 삼고 있습니다. 함께 땀 흘려 일하고 매일 저녁 모여 하늘을 찬양하며 늙고 병든 형제 자매를 끝까지 책임지는 이들의 모습은 참사랑이 일상화된 심정문화세계의 축소판과 같습니다. 그러나 이 아름다운 영적 오아시스 역시 섭리적 한계를 지닙니다. 이들은 폭력적인 세상과 타협하지 않기 위해 외부 세계와 철저히 선을 긋고 고립된 평화를 유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늘부모님의 뜻은 깊은 산속에 소수 의인들만의 피난처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80억 인류 전체의 구조적 죄악을 깨부수고 온 세상을 천일국으로 변혁시키는 폭발적인 구원 섭리에 있습니다. 자본주의 시장에서 증명된 연대의 힘, 몬드라곤 거대한 자본주의 시장의 한복판에서 이기주의를 극복할 수 있을까요. 스페인 바스크 지방의 몬드라곤 협동조합은 그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한 기적입니다. 1956년 호세 마리아 아리스멘디아리에타 신부에 의해 설립된 몬드라곤은 오늘날 수만 명의 직원을 거느린 세계 최대 규모의 협동조합으로 성장했습니다. 이곳은 자본이 인간을 지배하는 주식회사와 달리 인간이 자본을 주관합니다. 최고 경영자와 말단 노동자의 임금 격차를 극히 제한하여 경제적 평등을 실현하고, 모든 노동자가 조합원으로서 1인 1표의 동등한 투표권을 행사하여 회사의 주요 정책을 결정하는 공영의 형제주의 정치를 기업 구조 안에 완벽하게 구현했습니다. 한 부서가 경영 위기에 처하면 해고하는 대신 다른 부서로 재배치하는 눈물겨운 연대를 실천합니다. 몬드라곤은 인간의 이타적 연대와 민주적 구조만으로도 탐욕스러운 글로벌 자본주의 시장을 압도할 수 있음을 입증한 놀라운 섭리적 승리입니다. 다만 이 거대한 구조적 틀 안에 어떻게 영원히 변치 않는 하늘의 심정을 불어넣어 세속화를 방어할 것인가는 이들 역시 고민해야 할 궁극적 과제로 남아있습니다. 심정으로 세계를 하나로, 포콜라레의 공유경제 제도와 이념을 넘어선 가장 강력한 영적 경제적 연대가 바로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가톨릭 평신도 운동 포콜라레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참상 속에서 끼아라 루빅에 의해 창설된 이 운동은 예수님의 마지막 기도인 이 사람들이 모두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를 궁극의 목표로 삼습니다. 이들은 국경과 종교의 벽을 넘어 형제의 고통을 나의 고통으로 여기는 공의의 영성을 폭발시켰습니다. 특히 1991년 빈부격차의 참상을 목격한 끼아라 루빅은 기업가들에게 이윤의 3분의 1은 빈곤층 구제에, 3분의 1은 인간을 위하는 문화 양성에, 나머지 3분의 1만을 기업 재투자에 사용하자는 공유경제를 제창했습니다. 놀랍게도 전 세계 수백 개의 기업들이 이 뜻에 자발적으로 동참하여 기업 활동을 곧 참사랑의 실천으로 승화시켰습니다. 포콜라레의 성취는 제도를 법으로 강제하는 공산주의 방식이 아니라 인간 내면의 하늘을 향한 심정이 폭발할 때 자발적인 공생의 기적이 전 지구적으로 퍼져나갈 수 있음을 증명한 위대한 성령의 역사입니다. 실험을 넘어 천일국의 실체로 키부츠의 경제적 평등, 브루더호프의 영적 순결과 가정, 몬드라곤의 민주적 연대, 포콜라레의 심정적 공유경제는 인류가 하늘부모님의 창조이상을 더듬어 찾아온 피눈물 나는 섭리의 발자취이자 공생·공영·공의의 훌륭한 맹아들입니다. 그러나 이들의 위대한 헌신에도 불구하고 지구촌은 여전히 전쟁과 분열로 신음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제도의 혁신이나 윤리적 헌신만으로는 인간의 뼛속 깊이 각인된 사탄의 유전자, 즉 원죄의 뿌리를 완전히 뽑아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기주의의 독뿌리를 근원적으로 도려내지 않는 한, 아무리 완벽한 제도도 철저한 이념도 언젠가는 타락성의 위협 앞에 무너지고 맙니다. 따라서 이 모든 인류의 고귀한 실험들이 일시적인 성공이나 소수의 피난처로 끝나지 않고 전 우주적인 천일국으로 영원히 안착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인류를 사탄의 핏줄에서 하늘의 핏줄로 근원적으로 수술해 주실 참부모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참부모님이 열어주신 축복결혼을 통해 혈통을 전환한 참가정들이 몬드라곤처럼 공영의 일터를 가꾸고, 포콜라레처럼 부를 나누며, 브루더호프처럼 절대 순결의 문화를 전 세계로 확산시켜 나갈 때, 비로소 인류의 낡고 병든 역사는 종언을 고하고 하늘부모님이 직접 치리하시는 영원한 평화의 실체 세계가 이 지상 위에 웅장하게 건설될 것입니다.
권상기 2026.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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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미래세대를 위한 환경 복귀, 참부모님의 해양섭리와 선학평화상이 제시하는 희망

타락한 만물주관권, 신음하는 지구 남극의 빙하가 녹아내리고 아마존의 열대우림이 잿더미로 변해가는 오늘, 인류는 전례 없는 환경 위기 앞에 서 있습니다. 미세플라스틱은 해양을 오염시키고 기후 난민은 속출하며, 팬데믹은 예고 없이 찾아옵니다. 이러한 현상은 단순한 자연재해가 아니라 인간의 극단적 이기심과 무분별한 탐욕이 빚어낸 결과입니다. 창조원리에 따르면 하나님은 인간에게 만물을 사랑으로 주관할 권한, 즉 만물주관권을 세 번째 축복으로 주셨습니다. 본래 인간은 따뜻한 사랑으로 만물을 돌보고, 만물은 생명력을 제공하며 인간의 영적 성장을 돕는 완벽한 수수작용의 조화 속에서 살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타락 이후 인간은 자연을 형제나 하늘부모님의 작품이 아닌 약탈과 정복의 대상으로 전락시켰습니다. 하늘부모님의 피땀 어린 창조물인 지구가 처참하게 신음하는 현실은 인간의 타락이 임계점에 달했음을 보여주는 영적 증거입니다. 무자비한 개발과 착취는 창조본연의 질서를 무너뜨렸고, 그 대가는 고스란히 미래세대에게 떠넘겨지고 있습니다. 바다에서 찾은 인류 구원의 답, 해양섭리 참부모님께서는 일찍이 무분별한 산업화가 가져올 환경 파괴와 폭발적 인구 증가로 인한 미래 식량 위기를 섭리적 혜안으로 예견하셨습니다. 좁은 육지의 자원은 언젠가 바닥날 것이며, 강대국들이 식량을 무기화하여 약소국을 굶주림으로 통제하는 시대가 올 것을 내다보셨습니다. 이에 참부모님께서는 1970년대부터 전 세계 지도자들을 향해 미래 인류를 먹여 살릴 궁극적 대안은 바다에 있다고 선포하시며 해양섭리를 직접 개척하기 시작하셨습니다. 알래스카 코디악의 영하 수십 도 추위 속에서, 남미의 거친 풍랑이 몰아치는 바다에서 참부모님께서는 직접 작은 배를 타고 그물을 던지셨습니다. 이것은 결코 취미나 단순한 어업이 아니었습니다. 다가올 전 지구적 식량 위기로부터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바다의 무한한 자원을 개발하고, 수산 양식 기술과 고단백 식량을 연구하여 굶주리는 아프리카와 남미의 빈민들에게 대가 없이 나누어주기 위한 참사랑의 투쟁이었습니다. 참부모님의 해양섭리는 단지 육적 식량을 구하는 차원을 넘어 타락한 만물주관권을 복귀하여 창조본연의 심정을 회복하는 거룩한 영적 의식이었습니다. 만물과 심정으로 하나 된 참사랑의 모범 참부모님께서는 남미의 대습지 판타날과 아마존 강 유역을 탐사하시며 그곳에 서식하는 희귀 동식물들을 어루만지셨습니다. 모기떼와 독충이 들끓는 험지에서도 불평 없이 이곳은 하늘부모님께서 잃어버린 인류를 위해 남겨두신 마지막 에덴동산의 표본이라며 감격의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참부모님께서는 만물을 단순한 물질이나 도구로 보지 않으시고 그 숨결 속에 깃든 하늘부모님의 창조의 수고를 직접 느끼셨습니다. 낚시를 하실 때도 물고기와 심정적 대화를 나누셨고, 인간을 위해 희생하는 만물에 깊은 감사를 표하며 잡은 물고기를 통해 굶주린 인류를 먹여 살릴 수 있음에 눈물로 감사 기도를 올리셨습니다. 이러한 참부모님의 생애는 오늘날 기후 위기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명백한 섭리적 메시지를 던집니다. 자연을 보호하는 것은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는 정치적 환경 운동이 아니라 만물 속에 깃든 창조주 하늘부모님의 사랑을 깨닫고 잃어버린 만물주관권을 착취가 아닌 참사랑으로 복귀하는 가장 숭고한 신앙적 실천입니다. 미래세대를 향한 선물, 선학평화상 참부모님의 눈물겨운 비전은 참어머님에 의해 더욱 거대한 글로벌 평화 운동으로 승화되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인류 평화의 새로운 이정표가 된 선학평화상입니다. 기존의 세계적인 상들이 과거와 현재의 정치적 업적에 집중했다면, 선학평화상은 철저히 미래세대의 생존과 번영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참어머님께서는 평화는 단지 전쟁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미래세대가 깨끗한 환경 속에서 굶주리지 않고 인간의 존엄성을 누리는 것이라며 미래세대를 위해 묵묵히 헌신하는 숨은 의인들을 발굴해 오셨습니다. 기후 변화 위기로 수몰되는 섬나라의 비극을 전 세계에 알린 아노테 통 키리바시 전 대통령, 식량 안보를 위해 평생을 바쳐 청색혁명을 이끈 모다두구 굽타 박사, 아프리카의 난민과 여성의 인권을 위해 싸운 운동가와 의료진 등에게 거액의 상금과 함께 이 상을 수여하셨습니다. 선학평화상은 단지 상을 주는 일회성 행사가 아닙니다. 미래 인류의 생존권과 지구 환경을 지켜내는 것이야말로 이 시대에 우리가 마땅히 실천해야 할 가장 숭고한 공의이자 부모의 심정임을 전 세계 지도자들에게 각인시키는 인류 양심의 거룩한 등불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퓨어워터, 세상을 정화할 미래세대 참부모님의 해양섭리와 선학평화상이 지향하는 궁극적 지점은 타락으로 얼룩진 인류 문명을 맑게 씻어내어 하늘부모님과 효정으로 하나 된 미래세대에게 무사히 물려주는 데 있습니다. 참어머님께서는 타락의 탁류와 상관없이 맑고 순결한 미래세대를 가리켜 퓨어워터라고 부르셨습니다. 이기심으로 병든 지구촌을 치유하고 하늘부모님의 직접주관권 내에 2세권이 살아갈 실체적 환경을 복귀하는 천주적 정화 운동이야말로 오늘날 우리가 완수해야 할 엄중한 시대적 사명입니다. 이 장엄한 역사는 맑은 물방울들이 모여 강을 이루고 끝내 거대한 바다로 흘러가듯, 하늘과 완전히 하나 된 퓨어워터들의 효정으로부터 출발하여 천일국의 주역인 미래세대의 가슴속으로 멈춤 없이 이어져야 합니다. 참어머님께서는 선학장학재단, 천주평화사관학교, 세계평화청년학생연합 등을 통해 미래 지도자 양성에 아낌없이 투입하시며 창조이상을 영원히 실체화할 심정적 계승의 길을 열어 오셨습니다. 우리는 참부모님께서 거친 바다와 험준한 오지에서 인류를 위해 흘리신 눈물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됩니다. 이제는 인간의 탐욕을 내려놓고 일상의 자연부터 퓨어워터의 맑은 심정으로 아끼며, 참사랑의 전통을 이어받은 미래세대가 지구적 위기를 해결할 당당한 주역으로 도약할 수 있도록 굳건한 반석을 놓아주어야 합니다. 하늘의 책임을 짊어진 효정의 역군들이 섭리의 바다에서 힘차게 일어설 때, 신통일세계의 아침은 결코 지지 않는 찬란한 승리의 빛으로 완성될 것입니다.
권상기 2026.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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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심정문화와 기술 평준화로 여는 평화세계, 참부모님의 언론·과학·인프라 섭리

현대 사회를 지배하는 가장 강력한 무기는 총과 칼이 아닙니다. 오늘날 인류의 영혼을 가장 깊숙이 파고들어 파괴하는 것은 바로 문화와 언론입니다. 냉전 시대의 군사적 장벽이 무너진 이후, 세속적인 거대 미디어와 대중문화는 자극적인 폭력과 퇴폐적인 향락, 극단적인 이기주의를 여과 없이 조장하며 인간의 영혼과 가정의 가치를 무참히 짓밟고 있습니다. 영적 방어선인 도덕과 문화가 무너진 사회는 단 한 발의 총성 없이도 순식간에 타락의 수렁으로 빠져들게 됩니다. 타락한 문화의 홍수를 막아낸 언론과 예술 섭리 참부모님께서는 이러한 타락한 문화의 홍수를 온몸으로 막아내고 인류의 병든 영혼을 정화하기 위해 심정문화 창달의 섭리를 진두지휘하셨습니다. 공산주의의 위협과 세속적 자유주의의 타락이 극에 달했던 1980년대, 참부모님께서는 언론의 힘으로 세상을 깨우기 위해 일본에 세카이닛포, 미국 워싱턴에 워싱턴 타임스, 중남미에 티엠포스 델 문도, 그리고 한국에 세계일보를 차례로 창간하셨습니다. 이 언론들은 자본과 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고 가정의 가치와 도덕성 회복, 절대가치를 수호하며 현대 사회의 환부를 도려내는 시대의 양심이자 등대 역할을 철저히 수행했습니다. 동시에 참부모님께서는 딱딱한 이성과 논리만으로는 타락한 인간의 굳은 마음을 열 수 없음을 아시고, 심정을 가장 아름답게 순화시킬 수 있는 예술 섭리를 전개하셨습니다. 천상의 목소리로 전 세계 국가원수들을 감동시키고 철의 장막을 넘어 공산권에까지 평화의 메시지를 전한 리틀엔젤스 예술단, 그리고 서양의 발레에 동양의 효와 심정을 담아내어 세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린 유니버설발레단의 창설이 바로 그것입니다. 참부모님께서는 언론으로 이성의 오류를 깨우치고, 예술로 얼어붙은 심정을 녹여내어 전 세계의 문화를 하늘부모님을 찬양하는 심정문화의 옥토로 일구어 오신 것입니다. 과학과 종교를 융합한 국제과학통일회의 참부모님의 통일 섭리는 부드러운 문화와 예술을 넘어, 현대 문명을 이끄는 가장 강력한 도구인 과학으로 깊숙이 향했습니다. 과학 기술은 인류에게 무한한 물질적 풍요를 가져다주었지만, 절대적인 가치관의 통제를 벗어난 과학은 결국 핵무기로 인류를 파멸의 위협으로 몰아넣었고, 생명 복제와 무분별한 유전자 조작 등으로 인간의 존엄성마저 위협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과학의 맹목적인 폭주를 막기 위해, 참부모님께서는 1970년대부터 수많은 노벨상 수상자들을 비롯한 세계 최고의 지성인과 석학들을 모아 국제과학통일회의를 창설하셨습니다. 참부모님께서는 세계의 지성을 모아놓고 가치관이 결여된 과학은 맹목적이고, 과학이 결여된 종교는 무력하다는 위대한 명제를 선포하셨습니다. 외적 무지를 깨우치는 과학 기술이 인류를 파멸시키는 흉기가 아니라 평화의 도구로 온전히 쓰이기 위해서는, 반드시 하늘부모님의 참사랑이라는 내적 지혜의 절대적인 통제를 받아야 함을 일깨우신 것입니다. 기술 평준화로 실천하는 참사랑의 경제 과학 기술의 발달이 소수의 자본가가 아닌 전 인류의 행복을 진정으로 도모하기 위해서는, 참부모님께서 일찍이 주창하신 기술 평준화의 섭리로 이어져야만 합니다. 오늘날 타락한 자본주의 체제에서 선진국들은 첨단 기술에 엄청난 특허 장벽을 치고, 그 기술을 무기 삼아 개발도상국을 영구적으로 착취하며 부를 이기적으로 독점하고 있습니다. 하늘부모님의 부모의 심정으로 볼 때, 어느 한 자식은 기술을 독점하여 호의호식하고 다른 자식은 기술이 없어 굶어 죽어가는 것은 결코 용납될 수 없는 우주적인 죄악입니다. 참부모님께서는 일찍이 독일의 정밀 기계 기술과 일본의 제조 기술을 습득하여 한국의 통일산업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리셨고, 그렇게 피땀 흘려 이룩한 기술을 다시 아시아와 아프리카, 남미의 가난한 개발도상국에 조건 없이 무상으로 전수하는 위대한 모범을 직접 실천하셨습니다. 이것은 지적재산권이라는 이름으로 굳게 닫힌 선진국의 이기적인 곳간을 활짝 열어제치고, 가난한 형제 국가들이 스스로 일어서서 함께 잘살 수 있도록 돕는 실체적이고도 거룩한 공생 경제의 구현입니다. 국경을 허무는 국제평화고속도로 프로젝트 기술 평준화와 함께 신통일세계의 실체적 인프라를 지상에 완성하는 가장 거대한 글로벌 프로젝트가 바로 국제평화고속도로입니다. 참부모님께서는 1981년 서울에서 열린 제10회 국제과학통일회의에 모인 세계의 지성들 앞에서, 과거 철천지원수 국가였던 일본과 한국을 잇는 한일해저터널, 그리고 냉전의 장벽이었던 아시아와 북미 대륙을 잇는 베링해협 해저터널을 연결하여 전 지구촌을 단 하나의 거대한 교통망으로 묶는 프로젝트를 웅장하게 선포하셨습니다. 이 고속도로는 단순한 콘크리트 도로나 물류 이동의 수단이 아닙니다. 이 거대한 길을 통해 선진국의 물자와 기술 평준화의 혜택이 마치 동맥의 피처럼 가난한 나라의 혈관 구석구석으로 막힘없이 흘러들게 됩니다. 도로가 하나로 연결되면 나라를 가로막던 이기적인 국경선의 의미가 영원히 사라지고, 물자와 사람이 자유롭게 오가며 인종과 문화가 자연스럽게 교류하고 피를 섞게 됩니다. 일본과 한국이 해저터널로 이어지고, 러시아와 미국이 베링해협 터널로 연결될 때, 인류는 비로소 이기적인 국익 투쟁을 영원히 내려놓고 하늘부모님 아래 인류 한 가족이라는 거대한 섭리적 실체 속으로 온전히 들어가게 됩니다. 심정문화와 과학기술이 완성하는 평화세계 참부모님께서 피눈물로 구상하신 신통일세계는 치밀하고 거대한 현실적 인프라를 갖추고 있습니다. 국제과학통일회의를 통해 맹목적인 과학에 숭고한 절대가치를 부여하고, 기술 평준화와 국제평화고속도로를 통해 전 지구촌의 부를 고르게 분배하는 실체적인 공생의 뼈대를 마련하셨습니다. 그리고 세상을 깨우는 언론과 영혼을 달래는 예술 섭리를 통해 인류의 심정을 타락으로부터 지켜내는 심정문화의 방패까지, 모든 것이 완벽하게 섭리의 수레바퀴 안에서 맞물려 돌아가고 있습니다. 이제 인류를 먹여 살릴 외적인 인프라와 사상적 터전이 이토록 탄탄하게 마련되었으니, 이 거대한 지구촌을 정치적으로 화합하게 묶어내고 이끌어갈 새로운 글로벌 거버넌스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자국 이기주의와 패권 다툼으로 병들어버린 현재의 유엔을 근본적으로 혁신하여, 종교적 심정과 형제주의 정치가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초국가적 평화 연대를 향한 여정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권상기 2026.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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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아벨 유엔 UPF가 제시하는 글로벌 거버넌스 혁신과 초국가적 평화 연대의 미래

자국 이기주의에 갇힌 유엔, 그 한계를 넘어서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의 폐허 위에서 탄생한 국제연합(UN)은 인류가 다시는 전쟁의 참혹함을 겪지 않기를 바라는 염원으로 세워진 국제기구입니다. 지난 수십 년간 유엔은 국제 분쟁을 중재하고 인도적 구호 활동을 펼치며 세계 평화 유지에 기여해 왔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유엔은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전쟁과 학살, 기후 위기 앞에서 무기력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러한 한계의 근본 원인은 무엇일까요? 현재의 유엔은 인류 보편의 가치보다 자국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삼는 주권 국가들의 집합체로 전락했기 때문입니다. 특히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들이 거부권을 무기로 패권 다툼을 벌일 때마다 인류 전체의 생명과 공익은 뒷전으로 밀려납니다. 강대국들의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순간, 유엔은 그저 무력한 관망자로 남을 뿐입니다. 신통일세계의 정치 비전은 형제주의에 입각한 공영에 있습니다. 하지만 타락한 인간의 이성과 힘의 논리에만 의존하는 현재의 유엔 체제는 약소국을 품어 안는 공영의 정신을 실현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자국 이기주의라는 원죄의 벽 앞에서 작금의 국제 정치는 한계를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천주평화연합 UPF의 창설과 아벨 유엔의 비전 이러한 기존 유엔의 태생적 한계를 간파한 참부모님은 진정한 세계 평화의 구심점을 세우기 위한 섭리를 단행하셨습니다. 2005년 9월 미국 뉴욕 링컨센터에서 전 세계 국가수반과 종교 지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천주평화연합(UPF, Universal Peace Federation)이 창설되었습니다. UPF는 단순한 비정부기구가 아닙니다. 이기주의와 패권 다툼으로 타락한 가인 유엔을 섭리적으로 일깨우고 올바른 길로 인도할 아벨 유엔으로서 창설된 것입니다. 참부모님은 자국의 이익만을 대변하는 정치적이고 세속적인 유엔만으로는 결코 영구적인 세계 평화를 이룰 수 없다고 선포하셨습니다. 하늘부모님의 뜻과 참사랑을 중심 삼고 인류의 영적 양심을 대변하는 아벨적 평화 기구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아벨이 가인을 희생과 참사랑으로 품어 자연굴복시키듯, UPF는 기존 유엔을 적대하여 폐기하는 것이 아니라 참된 심정문화와 공영의 비전을 불어넣어 온전히 거듭나게 하려는 거룩한 섭리적 사명을 띠고 출범했습니다. 양원제 유엔과 초종교의회 신설 제안 UPF가 제시하는 가장 혁명적인 글로벌 거버넌스 비전은 바로 유엔 양원제의 제안입니다. 인간이 보이지 않는 마음과 보이는 몸으로 이루어져 있듯, 세계 역시 영적 가치를 추구하는 종교와 현실 제도를 다스리는 정치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몸이 마음의 지시를 받을 때 온전한 사람이 되듯, 정치와 경제도 올바른 영적 가치관의 지도를 받아야만 타락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현재의 유엔 총회는 오직 각국의 이익을 쟁취하려는 정치 대표들로만 구성되어 있어 양심의 소리를 잃어버린 채 욕망의 바다를 헤매고 있습니다. 이에 참부모님께서는 기존의 정치적 유엔 총회를 하원으로 삼고, 전 세계의 훌륭한 종교 지도자와 정신적 스승들로 구성된 초종교초국가평화의회를 상원으로 신설하여 유엔을 양원제로 개편해야 한다고 제안하셨습니다. 진실한 종교 지도자들은 좁은 국익이나 정치적 파벌을 대변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하늘의 뜻과 인류 보편의 양심을 대변합니다. 초종교의회가 이기적인 유엔 총회를 영적이고 도덕적으로 지도하고, 가인과 아벨이 하나 되듯 종교와 정치가 완벽한 수수작용을 이룰 때 유엔은 비로소 강대국의 횡포를 끝내고 약소국과 형제처럼 함께 번영하는 진정한 공영의 글로벌 거버넌스로 거듭날 수 있습니다. 평화대사와 초국가적 평화 네트워크의 구축 아벨 유엔의 원대한 비전을 현실의 기반 위에 실체적으로 구현하기 위해 UPF는 전 세계 각계각층의 지도자들을 평화대사(Ambassadors for Peace)로 임명하여 강력한 초국가적 평화 네트워크를 구축했습니다. 평화대사는 자국의 이기적인 이익을 대변하는 세속적인 외교관이 아닙니다. 이들은 국경, 인종, 종교의 장벽을 초월하여 위하여 사는 삶이라는 참사랑의 철학에 동의하고 이를 삶으로 실천하는 하늘부모님의 특사들입니다. 오늘날 수백만 명의 평화대사들이 세계 도처에서 갈등과 분쟁을 중재하고 참가정의 가치와 심정문화를 전파하고 있습니다. 특히 참어머님의 영도 아래 UPF는 세계평화정상연합(ISCP), 세계평화국회의원연합(IAPP), 세계평화종교인연합(IAPD), 세계평화경제인연합(IAED) 등 사회 각 분야의 전문 연대체를 촘촘히 결성했습니다. 이는 정치, 경제, 학술, 언론, 종교 등 파편화되어 이기적으로 굴러가던 사회의 모든 영역이 톱니바퀴처럼 하나로 맞물려 하늘부모님을 중심으로 한 방향을 향해 정렬되도록 이끄는 거대한 평화의 엔진이자 신통일세계의 실체적 뼈대입니다. 평화대사협의회와 한반도 통일을 향한 실천 거대한 글로벌 거버넌스의 혁신은 내가 딛고 선 지역 사회의 풀뿌리 실천과 하나 될 때 비로소 완성됩니다. 이를 위해 대한민국을 비롯한 전 세계 각국에서는 평화대사협의회가 결성되어 참부모님의 평화 사상을 땀방울로 실체화하는 행동하는 양심으로 활약하고 있습니다. 평화대사협의회는 화려한 회의실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이웃의 고통을 나의 고통으로 여기는 긍휼의 심정으로 소외된 이웃을 돌보는 구호 활동, 환경 정화 운동, 다문화 가정 지원 등 헌신적인 봉사활동에 앞장서며 지역 사회에 참사랑의 온기를 불어넣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한국의 평화대사협의회는 복귀섭리의 최종 기착지인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남북통일운동 국민교육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한국 사회는 극심한 이념 대립과 남남갈등으로 분열되어 있으며 다음 세대는 경제적 이유로 통일의 필요성조차 잃어버리고 있습니다. 평화대사들은 두익사상을 바탕으로 사상적 혼란을 일깨우고 한반도의 통일이 단순한 정치적 결합이나 경제적 이익의 문제가 아니라 하늘부모님의 섭리를 완성하고 세계 평화의 모세 혈관을 뚫는 거룩한 성업임을 온 국민에게 교육하고 있습니다. 평화대사협의회는 위에서부터의 글로벌 거버넌스 혁신과 아래로부터의 풀뿌리 통일 운동을 완벽하게 하나로 연결하며 신통일한국과 신통일세계를 앞당기는 가장 뜨거운 실천적 심장으로 고동치고 있습니다.
권상기 2026.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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